중국 정부가 간첩 사건 피고인 유우성(34)씨의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된 검찰측 자료 3건이 모두 위조됐다고 통보한 것은 지난 2월 14일. 이후 두 달간 국가정보원은 인권과 사법시스템을 유린한 증거조작뿐 아니라 거짓 해명, 그리고 북한에 남아있는 탈북자 가족의 안전은 뒷전인 언론플레이 등으로 무능ㆍ무법 집단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법원ㆍ검찰ㆍ외교부 농락한 국정원
14일 검찰의 최종 수사결과 발표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유씨에 대한 1심 무죄 판결을 뒤집기 위해 국정원 대공수사국에서 자행한 대형 증거조작 범죄였다. 지휘부인 이모(55) 대공수사처장을 비롯해 실무진인 김모(48ㆍ구속기소) 과장과 권모(51ㆍ시한부 기소중지) 과장, 주 선양(瀋陽)총영사관 이모(49) 영사가 공모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이들이 중국 허룽(和龍)시 공안국 명의의 사실조회서와 유씨 변호인이 제출한 싼허(三合)변방검사참(출입국사무소) 정황설명서를 반박하는 내용의 답변서, 이를 인증하는 영사확인서를 위조했다는 게 검찰 조사 결과다. 이 문서들은 모두 검찰을 통해 법원에 제출됐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선양 영사관을 비롯한 우리 외교라인과 공소유지를 맡은 검찰, 나아가 중국 공안까지 철저히 농락했다. 자신들이 제출한 유씨 출입경기록의 발급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검찰이 선양 총영사관에 공문을 보내자, 이를 사전 계획에 따라 빼돌린 것은 물론 가짜 발급확인 공문을 만들어 팩스로 보내는 기상천외한 일도 벌였다.
거짓 해명 일관, 묵비권 행사까지
국정원은 사건 초기부터 거짓 해명만 내놓았다. 증거 위조의 정황이 드러날 때마다 '급한 불부터 끄자'는 식으로 대응하다 보니 거짓말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중국 정부의 회신 내용이 공개되며 조작 의혹이 제기된 2월 14일 "위조는 없었다"고 발뺌한 것을 시작으로, "비공식적으로 입수했다" 등으로 말을 바꾸면서도 진본 주장을 고수했다. 검찰의 감정 결과 국정원이 낸 문서의 관인이 유씨 변호인단이 확보한 문서의 관인과 다른 것으로 나오자 "고무관인은 누르는 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황당한 자료를 냈다. 외부협력자 김모(62)씨가 검찰 조사를 받고 자살을 시도한 직후인 3월 9일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국민께 사과한다"고 밝힐 때조차도 "국정원도 협조자 김씨에게 속았다"고 덤터기 씌우기에 바빴다.
국정원이 거짓 해명으로 일관하는 사이 수사팀에 불려가 조사를 받게 된 대공수사국 관계자들은 '침묵과 부인' 전략을 구사했다. 남재준 국정원장과 대공수사국장, 단장 등 윗선의 개입에 대해 일관되게 "구체적인 보고는 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이다. 권 과장과 이 영사가 주고 받은 국정원 전문이나 문서위조 대가로 지급한 비용 지출 등 일부 윗선의 결재가 있었음에도 "전자 결재로 내용은 잘 모른 채 클릭만 한 것"이라며 끝까지 부인했다. 이 처장은 내내 묵비권을 행사했다. 수사 초기 국정원 자체 조사를 토대로 한 진술서를 보냈지만 수사팀은 이마저도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았다"고 밝혔다.
탈북자 가족 안전 무시한 언론플레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용을 흘리기 위해 국정원은 탈북자 가족이 위험에 처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유씨의 재판에서 비공개로 증언한 내용이 북한에 알려져 가족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출신 탈북자의 탄원서(재판부에 제출)가 일부 언론에 공개된 과정은 국정원의 '언론플레이'로 드러났다.
탈북자 A씨는 "탄원서 내용이 알려지면 북한의 가족들이 위험해 질 수 있는데도 국정원이 나서 특정 언론과의 인터뷰를 주선했고, 언론에 탄원서를 제공했다"면서 "결국 이후 딸이 행방불명됐다"고 주장했다. 대공수사국 이 처장은 탄원서를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려는 A씨를 찾아가 대가를 제시하며 소송 포기를 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국정원의 언론플레이 논란이 일었다. 수사팀 관계자는 여러 차례 "누가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해 방향성을 가지고 끌고 가려고 하고 있다"며 국정원을 겨냥해 불만을 터뜨렸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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