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소설론을 가르치는 선생이지만, 이 정권 들어서는 뭔가 늘 부끄럽고 왠지 죄송스럽다. 남북관계와 우리의 정치 현실은, 소설 따위보다는 훨씬 더 극적이고 기상천외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상상력이 빈곤한 나는, 작년 이래 국정원이 벌인 일 같은 것을 한 번도 상상해보지도, 소설에서 읽어보지도 못했다. 물론 작년부터 국정원에 국내 최고의 문학상을 수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는 했다. 할리우드에서 괜히 를 촬영하러 서울에 온 것이 아니리라. 진정 한국에서 배울 게 많은 것이리라.
서울시 공무원 간첩 혐의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자살을 기도했던 국정원 권모 과장도 나를 놀라게 했다. 애초 그가 번개탄을 피워 자살 기도를 했을 때, 서울아산병원 주치의는 소생할 확률이 3~7% 밖에 안 된다고 했다. 나도 그 병원에 가본 적이 있는데, 분명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좋은 병원의 하나였다. 그런 병원의 주치의가 '기적에 가깝다'고 말할 정도라니! '불타는 애국심'을 가졌을 권 과장은 국정원 직원답게 기적을 이뤄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한다. 그런데 참 안타깝게도 최근의 기억은 잃었다 한다. 자신이 왜 병원에 입원해 있는지, 유우성 씨 사건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기억 못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 이번엔 무인기다. TV 뉴스를 보노라니 불안해서 못 살겠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안보 과제'는 끝이 없다. 핵무기에 대륙간탄도탄에 장사정포에, 저놈들을 완전히 쓸어버리지 않고는 도저히 두 다리를 뻗고 살 수가 없겠는데, 2,000억인가를 주고 무인기를 감시할 이스라엘제 레이더를 산다 한다. 이왕 이스라엘제를 사는 김에, 그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한테 그랬듯, 콘크리트 장벽을 휴전선에 쌓으면 어떨까? 마그마 층부터 대기권 끝까지 쌓으면 좋겠다. 사람이건 포탄이건, 무인기건 뭔가 넘어오는 것 자체가 안보를 위협하니, 새 한 마리, 쥐새끼 한 마리 휴전선을 넘지 못하게 말이다. 건설경기도 살리고, 중국발 황사도 막고.
그런데 우리 앞에는 심오한 통일대박론과 온 겨레를 구하고 민족번영의 천 년을 열겠다는 '드레스덴 구상'도 있다. 나처럼 머리 나쁜 사람은 상시화된 안보 위기와 저 원대한 구상이 함께 이해가 가질 않는다.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죽이려는 저들과 무슨 대화며 통일인가? 매일 언론이 북한과 종북 분자들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고, 여성부를 없애고 무기를 더 사라는 '애국 네티즌'들의 아우성이 연일 메아리치는데 어떻게? 분단사가 개시된 이래 통일과 '백두혈통'에 대한 국민의 합당한 회의와 혐오감이 요즘같이 높은 때가 없었는데 어떻게?
허경영 씨처럼 IQ가 430쯤은 돼야지 이정권의 '안보'와 통일대박론을 동시에 이해할 수 있을까? 허씨처럼 공중부양해서 어버이연합과 일베 나아가 미국ㆍ중국을 동시에 만족시키고, 핵 문제도 해결하고 천안함의 교훈도 살리고, 경제제재를 유지하면서 대북 투자도 늘리는, 그런 섬세함, 그런 포용과 안보강화, 그런 반김정은과 한미동맹강화, 즉 IQ 430 같은 실천이 있다면 당연히 박대통령은 DJ를 능가하고 김구 선생을 넘어서리라.
대통령은 싸구려 무인기와 북한의 싸구려 욕설에도 굴하지 않고, "이럴 때일수록 더더욱 북한 주민들의 인도적 문제 해결과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 동질성 회복을 위한 노력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한다. 그러나 대북구상의 진정성을 이해 못하는 것은 구상을 거부한 북한뿐 아니다. 북녘 '빨갱이'들과의 대화나 협력 없이, 어떻게 인도적 문제 해결이나 남북 동질성 회복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경제지상주의적이며 탐욕스런 '대박론'과 70년대 수준의 반북ㆍ반공 히스테리가 병존하는 상태를 벗어나야, 현 정부가 이명박 정권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고 통일과 평화에 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무기를 많이 사도 안보 불안은 해소되지 않는다. 대화가 안보며, 평화가 복지 아닌가? IQ 430이 아니라도 이해 가능한 일이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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