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잠시 내 짝이었던 친구는 정수리 부분이 훤했다. 열예닐곱 여고생에게 대머리 징후가 나타난 건 물론 아니고, 독특한 버릇 탓이었다. 문제지를 풀면서도 교과서에 밑줄을 그으면서도 남은 한 손으로는 늘 머리카락을 뽑는 것이었으니, 어느 날 나는 그 애의 손을 잡고 물었다. "대체 왜 그러는데?" 울상과 함께 돌아온 답은 이랬다. "가리마 부분으로 삐죽삐죽 솟는 잔머리가 너무 싫어. 너무." 잔머리야 누구나 있는 거고 그 고약한 버릇 때문에 살이 드러난 정수리가 더 흉하다고 일렀지만, 원래 남들 눈보다 자기 눈에 비친 모습이 중요하기 마련이니 소용없는 일이었다. 오랜만에 그 친구가 생각난 건 며칠 전 증명사진을 찍고 나서였다. 사진을 받아갈 생각으로 현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자니 사진관 주인이 보정 작업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잡티를 지우고 입술선을 다듬고 짝짝이 눈매도 엇비슷하게 만들고…. 그리고 출력된 사진에는 머리에서 어깨에 이르는 윤곽이 매끈하게 정리되어 오려 붙인 듯 흰 바탕 위에 놓여 있었다. 잔머리를 솎아낸 것처럼 휑해 보였다. 옛 짝은 학년이 끝날 즈음 예의 그 버릇을 버렸는데, 계기가 뭐였는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새로 솟은 머리칼에 손바닥을 댈 때의 간질간질한 느낌이 맘에 들게 되었다고 했다. 내가 사진관을 나서면서 보정 전 파일을 함께 받아온 건, 그 말을 하던 친구의 인상적인 표정이 떠올랐기 때문인 것 같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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