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이 14일 "흡연 때문에 추가로 부담한 진료비를 물어내라"며 ㈜KT&G·필립모리스코리아㈜·BAT코리아㈜ 등 국내외 3개 담배제조사를 상대로 547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가액 547억원은 흡연과의 인과관계가 인정된 소세포암(폐암), 편평세포암(후두암) 환자 중 30년 이상의 흡연기간, 20갑년(1일 1갑씩 20년간 피운 흡연량) 이상의 흡연력을 가진 이들을 대상으로 지불한 치료비를 추정한 것이다.
한국소비자연맹, 한국부인회 등은 "흡연의 피해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삶의 질 향상에 필요한 소송"이라며 지지성명을 냈지만, 지난 10일 대법원이 흡연 피해보상을 청구한 개인들에게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 건보공단이 무리하게 소송을 제기한다는 시각이 부쩍 커지고 있다.
개인들의 담배 소송과정에서 일부 암은 담배 때문에 발병했다는 인과관계가 인정되기는 했지만 대법원은 '담배의 위험성을 숨긴 담배회사의 과실과 고의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것이 건보공단에 적지 않은 부담이다. 송옥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흡연을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으로 치부한 법원의 판결이 억울하기는 하겠지만, 건보공단이 담배회사의 과실 등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승소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선영 건보공단 법무지원실 선임전문연구위원(변호사)은 "이번 소송의 당사자인 필립모리스와 BAT는 미국 내 소송에서 니코틴 함량조작, 흡연의 해독성에 대해 허위주장을 한 것으로 밝혀졌고 (국내 재판에서도) 이를 부인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KT&G도 개인들이 낸 소송에서는 담배의 유해성을 부인했었지만 (외국 담배회사가 유해성을 시인하면) 적잖은 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건보공단은 또한 담배회사 내부고발자의 정보 공개를 기대하고 있다.
건보공단의 소송 제기를 내심 반대해 온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는 소송비용으로 국민의 건보료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소송비용은 최소 3억원에서 최대 5억8,000여만원으로 지나치게 큰 금액은 아니다.
김종대 건보공단 이사장은 이날 "담배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없어져야 할 공적(公敵) 1호로 지적한 것으로 이번 소송은 좌고우면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며 "(담배소송은) 양심의 문제, 사회정의 차원의 문제"라고 명분을 내세웠다. 흡연소송을 지지하는 전문가들도 승소 가능성보다는 소송의 공익성에 방점을 뒀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교수(금연운동협의회 회장)는 "개인의 책임 문제를 따지는 소송이 아니라 확률로서 해볼만한 가치가 있다"면서도 "승소 가능성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건보공단은 이번 소송의 외부 대리인으로 법무법인 남산(대표변호사 정미화)을 선임했다. 남산은 공단 변호사 3명(안선영, 임현정, 전성주)과 함께 소송대리인단을 구성 소송을 진행하게 된다. 남산은 지난 10일 대법원이 패소판결한 KT&G와 국가를 상대로 흡연자 30명이 낸 손해배상소송의 대리인이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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