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이승엽(38ㆍ삼성)은 6번 타자다. 지난 1995년 1군에 데뷔한 뒤 줄곧 3~5번을 도맡다가 타순이 한 단계 하향조정 됐다. 이승엽은 우리 나이로 어느덧 서른 아홉 살이다. 류중일 삼성 감독의 표현대로라면 "나이 먹은 알리, 타이슨에게 계속 이기길 바라면 안 되는 것처럼" 이승엽에게도 무작정 홈런만 기대해선 안 된다. 그만큼 세월은 흘렀고 파워도, 기술도 예전과 다르다.
그래도 이승엽은 이승엽이다. 팀의 상징인 중심 타선에서 한 발짝 물러났지만 놀라운 적응력으로 '헌신' 중이다. 이승엽은 14일 현재 10경기에 모두 출전해 타율 3할3푼3리(39타수 13안타)에 1홈런 6타점을 올리고 있다. 3번 채태인(0.341) 4번 최형우(0.351) 5번 박석민(0.459)과 함께 나란히 3할 타율. 공포의 3~6번 라인을 완성했다.
무엇보다 높은 진루타율이 인상적이다. 이승엽은 지금까지 24차례 주자가 있을 때 타격해서 15번 진루시키는 데 성공했다. 확률로는 60%가 넘는 수치, 6할2푼5리다. 9개 구단에서 이승엽 보다 진루타율이 좋은 선수는 박용택(0.714ㆍLG) 박석민(0.684ㆍ삼성) 조동화(0.652ㆍSK) 등 5명뿐이다. 지난해 진루타율이 3할9푼9리(93/233)이었던 이승엽은 바뀐 타순만큼 타격 스타일도 변했다.
6번 이승엽의 역할은 팀 배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시즌 초반 꾸준한 타격감으로 안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지난달 29일 대구 KIA전에서만 무안타로 침묵했을 뿐, 다음날 경기부터 지난 13일 대구 SK전까지 9경기 연속 안타를 터뜨렸다. 투수 유형 별로는 오른손 투수에게 3할, 왼손 투수에게 3할6푼8리로 오히려 좌투수에게 강하다.
지난 시즌 이승엽은 혹독한 한 해를 보냈다. 111경기에서 타율 2할5푼3리에 13홈런 69타점으로 이름 값을 못했다. 3월 1할2푼5리, 4월 2할2푼5리 등 시즌 초반 낮은 타율에 허덕이다가 끝내는 2할 후반대 타율 진입에도 실패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스탠스를 줄이며 타격폼 변신을 꾀했고 내일 경기, 내년 시즌, 내후년 해를 대비했다.
올 시즌 쾌조의 스타트는 이러한 노력의 산물이다. 몇 차례 타점 찬스를 놓친 건 아쉬운 대목이지만, 이승엽은 흘러간 세월에 자연스럽게 적응하며 이름값을 해주고 있다. 류중일 감독도 "요즘 이승엽이 정말 잘해주고 있다"며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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