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프로배구의 최강자 삼성화재는 2013~14시즌 통합 우승을 차지, 한국 프로스포츠사상 처음으로 7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삼성화재를 이끈 신치용(59) 감독의 입에서 가장 자주 이름이 거론된 것은 주포 레오 마르티네스(24)도, 세터 유광우(29)도 아니었다. 바로 올 시즌을 앞두고 새롭게 FA(자유계약선수)로 영입한 리베로 이강주(31)였다. 이강주는 가장 중요했던 현대캐피탈과의 챔피언결정전 3, 4차전에서 안정된 플레이로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신 감독은 우승 이후 “강주가 믿음에 보답해줬다. 덕분에 우승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통합 우승 뒤 꿀맛 같은 휴가를 보내고 있는 이강주는 전화 통화에서 “나 때문에 우승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겁이 났던 게 사실”이라며 “마지막에 정상에서 웃을 수 있어서 너무나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포스트 여오현’에 대한 부담감
이번 시즌 내내 이강주 앞에는 ‘포스트 여오현’ 이라는 말이 계속 따라 다녔다. 삼성화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여오현(35)은 올 시즌을 앞두고 FA 자격을 얻어 현대캐피탈로 전격 이적했다. 여오현이 꾸준한 활약을 펼친 것과 대조적으로 이강주는 시즌 초반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이강주는 “솔직히 오현 선배나 석진욱(은퇴) 선배의 빈자리를 메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라며 “집중력도 떨어지면서 실망스러운 플레이를 펼쳤다”고 되돌아봤다.
힘들어 할 때마다 이강주를 깨우친 건 신 감독의 말이었다. 신 감독은 “넌 여오현도 석진욱도 아니다. 무엇 때문에 네가 그들이 되려고 하느냐”고 다그쳤다. 이강주는 “생각해보니 난 그냥 이강주였다. 그 누구도 아니었다. 그것을 깨닫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고 전했다. 이어 “시간이 지나면서 (부진의 원인이)부담감이 아닌 부족했던 내 실력 때문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자신을 내려놓고 경기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먼 길을 돌아와 차지한 첫 우승 트로피
프로 첫 우승까지 참 먼 길을 돌아왔다. 2005년 2라운드 1순위로 삼성화재에 입단한 이강주는 2007년 상무 입대 후 2008~09시즌을 앞두고 당시 신생 팀 우리캐피탈(우리카드 전신)의 확대 드래프트(신생 팀 창단 시 각 구단 보호선수 외에서 한 명씩 지명할 수 있는 제도)에 뽑혀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이후 5년 만에 FA로 삼성화재에 돌아온 그는 힘겹게 프로 첫 우승을 차지했다.
사실 이강주는 삼성화재 출신임에도 지난 시즌까지 우승 트로피를 들지 못한 선수였다. 신인시절 여오현의 백업 선수로 2차례 챔프전에 나가서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다. V리그 출범 이후 9차례 챔프전에서 유일하게 삼성화재가 현대캐피탈에 패해 우승하지 못했던 2시즌이었다.
이강주는 “친한 친구들끼리 농담으로 ‘너 때문에 삼성화재가 우승 못하는 것 아니냐’고 했는데 그 말이 마음 아팠다”면서 “그런 것들이 더 동기 부여가 됐던 것 같다. 결국 우승을 통해 다 털어버릴 수 있어서 기쁘다”고 웃었다.
올 시즌은 0점, 완벽해진 모습으로 돌아올 것
이강주는 올 시즌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수비 조직력을 강조하는 삼성화재에서 리베로의 불안한 모습은 용납되기 힘들었다. 부진이 이어지자 김강녕(28)이 주전 리베로로 나서기도 했다.
이강주는 “흔들릴 때마다 신 감독님께서 제일 많이 해주신 말씀은 ‘불안하면 코트에 나가서 연습하라’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강주는 훈련이 다 끝난 뒤에도 불안한 마음에 다시 코트에 나서길 수 십 번 반복했다. 챔프전 전날까지도 잠을 못 자고 끊임없이 연습에 매진했다. 그리고 피나는 노력은 가장 중요한 순간 불안함을 신뢰로 바꿔줬다.
이강주는 이번 시즌 본인의 활약에 대해 “도저히 점수를 줄 수가 없다. 0점이다. 팀에 폐만 끼쳤다”고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여오현의 뒤를 잇는 최고의 리베로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기대에 충족시키지 못했던 이강주는 다음 시즌 팀의 8연패를 이끌겠다고 다짐했다.
“정말 죽도록 연습해서 다음 시즌에는 (이강주 덕분에)삼성화재 수비력이 다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꼭 그렇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재상기자
한국스포츠 이재상기자 alexei@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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