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이야기 한다. 9이닝을 진행하는 동안 어느 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으며 한시도 눈을 떼기 어려운 것이 야구다. 또한 인생에 비유해서 찬스 다음에는 위기가 오고 또 다시 상황이 역전되는 것이 매력이며, 지고 있는 팀이 9회말 2아웃에서 역전승하는 경기는 거의 모든 사람들을 열광케 한다. 하지만 경기를 직접 지휘해야 하는 감독이나 코치라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팬들이 열광하는 돌발 상황이나 역전의 기회를 제공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야구는 두 팀에게 똑같이 주어진 규칙으로 게임을 하며 한 경기에 출전 할 수 있는 선수도 보통 26명 정도로 정해져 있다. 내가 있는 볼링그린 고등학교는 우리의 1군에 해당하는 대표(varsity) 선수 15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왼손 에이스(ANDY), 오른손 에이스 (CROMLY)의 원투 펀치에 3명의 투수가 더 있다. 그리고 각 포지션 별 주전 선수와 백업 선수로 구성되어 있다. 고등학생들은 투수를 하며 다른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운영을 잘 해야 한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 감독과 코치가 하는 일은 훈련이지만 전체적인 선수단 운영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한다. 지난해 경험을 통해 투수와 타자를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맡고 있는 타격 부문은 선수들의 컨디션을 매일 체크해야 한다. 그리고 각 선수 별 장단점을 파악해서 상대 투수의 유형에 따라 타순을 바꾸기도 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컨디션이 떨어 졌을 때 빨리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선수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게임 운영의 핵심은 상대와의 싸움이다. 선수들이야 당연히 던지고 치고 뛰며 경기를 하지만 코칭스태프는 벌어질 상황에 대해 미리 계산해 놓아야 한다. 프로 경기로 예를 들자면, 먼저 상대 선발 투수의 이전 게임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체크해 보고, 우리 타자들과의 기록을 수치상으로 일단 확인한다. 그리고 기록으로 나타난 것 이외에 우리 타자들의 스윙 궤적과 상대 투수의 투구 각도, 그리고 상대의 주무기와 결정구가 무엇인지를 파악해놔야 한다. 그래야 결정적인 찬스에 대타를 써야 한다면 어떤 선수가 가장 적합할 것인지 빨리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상대의 필승조 운영 상황에 대해 체크해서 좌ㆍ우완과 투구 유형 그리고 길게 던지는 투수인지, 아닌지 확인해서 준비해야 한다. 더 나아가 우리 팀 대타요원의 수비와 공격력을 저울질해 보고 미리 쓸 것이지 아낄 것인지 아니면 상대 투수를 바꾸게 유도하는 대타를 쓸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몇 년 전 LG에서 코치를 하던 시절 SK와의 경기에서 후반 찬스에 이병규(9번) 선수가 들어섰다. 그때 상대는 왼손 신인 투수로 교체했다. 우리 벤치도 고민 후 오른손 대타를 내세웠다. 결과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고 상대의 목적은 왼손 투수를 등판시켜서 이병규 선수를 상대하게 되면 어렵게 포볼로 내보낸 뒤 다른 투수로 바꾸고 만약에 대타가 나온다면 누가 나온다고 해도 이병규 선수와 승부하는 것보다는 이길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야구는 결과가 말해주는 경기다. 하지만 결과를 예측해서 움직여야 하는 것이 코칭스태프의 역할이다. 그래서 야구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표현하지만 코칭스태프는 각본이 없어서는 곤란하다는 이야기다.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를 준비해서 게임 전에 시뮬레이션을 해 보며 돌발 상황을 준비해야 치명적인 실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야구는 흐름의 스포츠다. 어느 팀이 먼저 흐름을 잡느냐가 중요하며 반대로 흐름이 상대로 넘어 갈 것 같으면 최선을 다해 흐름을 끊어야 하는 것 역시 코칭스태프의 역할이다.
“경기를 이해하고 작전을 수행하는 능력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방법만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능력도 없다.”(정운찬의 야구예찬)
우리는 어려서부터 이기는 것만을 배워왔다. 그렇다 보니 사고하는 것보다는 기술 훈련을 하나라도 더 하는 것에 시간을 할애했다. 그렇게 되면 선수들이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제대로 대처를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야구 선수이면서 학생이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공부와 야구를 병행한다. 결국 야구 운영 또한 생각이 많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해온 것이 게임에 이기기 위해 오로지 연습을 많이 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 곳 미국에서 게임을 하다 보니 선수들은 기술적인 부분에 최선을 다 하고, 코칭스태프는 전체 운영을 세밀하게 하는 것이 결국 게임을 승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볼링그린 하이스쿨 코치ㆍ전 LG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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