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프로배구 삼성화재가 한국 프로스포츠사상 첫 7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삼성화재를 이끈 신치용(59) 감독의 입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이름은 주포 레오 마르티네스(24)도 세터 유광우(29)도 아니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새롭게 FA(자유계약선수)로 영입한 리베로 이강주(31)였다. 이강주는 현대캐피탈과의 챔피언결정전 3, 4차전에서 안정된 플레이로 승리의 수훈갑이 됐다. 신 감독은 “강주가 믿음에 보답해줘 우승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강주는 11일 전화 통화에서 “나 때문에 우승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겁이 났다”라며 “마지막에 정상에서 웃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포스트 여오현’에 대한 부담감
이번 시즌 내내 이강주 앞에는 ‘포스트 여오현’ 이라는 말이 따라 다녔다. 삼성화재 전성기를 이끌었던 여오현(35)이 시즌을 앞두고 FA로 라이벌 현대캐피탈로 전격 이적했다. 이강주를 깨우친 건 신 감독의 말이었다. 신 감독은 “넌 여오현도, 석진욱도 아니다. 무엇 때문에 네가 그들이 되려고 하느냐”고 다그쳤다. 이강주는 “생각해보니 난 그냥 이강주였다. 그 누구도 아니었다. 그것을 깨닫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고 전했다. 이어 “시간이 지나면서 (부진의 원인이) 부담감이 아닌 부족했던 내 실력 때문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자신을 내려놓고 경기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먼 길을 돌아와 차지한 첫 우승 트로피
프로 첫 우승까지 참 먼 길을 돌아왔다. 2005년 2라운드 1순위로 삼성화재에 입단한 이강주는 2007년 상무 입대 후 2008~09시즌을 앞두고 당시 신생 팀 우리캐피탈(우리카드 전신)의 확대 드래프트(신생 팀 창단 시 각 구단 보호선수 외에 한 명씩 지명할 수 있는 제도)에 뽑혀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이후 5년 만에 FA로 ‘친정’ 삼성화재에 돌아온 그는 힘겹게 프로 첫 우승을 차지했다.
사실 이강주는 삼성화재 출신임에도 지난 시즌까지 우승 트로피를 들지 못한 선수였다. 신인시절 여오현의 백업 선수로 2차례 챔프전에 나가서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다. V리그 출범 이후 9차례 챔프전에서 유일하게 삼성화재가 현대캐피탈에 패해 우승하지 못했던 2시즌이었다.
이강주는 “친구들끼리 농담으로 ‘너 때문에 삼성화재가 우승 못하는 것 아니냐’고 했는데 그 말이 상처가 됐다”면서 “그런 것들이 더 동기 부여가 됐던 것 같다. 결국 우승을 통해 다 털어버릴 수 있어서 기쁘다”고 웃었다.
올 시즌은 0점, 완벽해진 모습으로 돌아올 것
이강주는 올 시즌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수비 조직력을 강조하는 삼성화재에서 리베로의 불안한 모습은 용납되기 힘들었다. 부진이 이어지자 김강녕(28)이 주전 리베로로 나서기도 했다. 이강주는 “흔들릴 때마다 신 감독님께서 제일 많이 해주신 말씀은 ‘불안하면 코트에 나가서 연습하라’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강주는 훈련이 다 끝난 뒤에도 불안한 마음에 다시 코트에 나서길, 수 십 차례 반복했다. 챔프전 전날까지도 잠을 못 자고 끊임없이 연습에 매진했다.
이강주는 올 시즌 본인의 활약에 대해 “도저히 점수를 줄 수가 없다. 0점이다. 팀에 폐만 끼쳤다”고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정말 죽도록 연습해서 다음 시즌에는 (이강주 덕분에) 삼성화재 수비력이 다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꼭 그렇게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재상기자 alexe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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