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가전회사 밀레의 한국지사인 밀레코리아 청소기 담당자는 이달 초 본사에 "헤파필터(HEPA) 청소기를 더 보내달라"는 SOS를 보냈다. 지난달 이후 벌써 3번째 긴급요청이었고, 그 때마다 본사는 선박 아닌 비행기로 제품을 보내줬다. 그는 "1년에 한 두 차례 비행기로 물건을 받은 적은 있었지만 두 달 새 3차례나 받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밀레코리아에 따르면 올 들어 청소기 판매량이 30% 이상 늘었으며, 현재 판매 중인 청소기 10대 중 8대는 헤파필터 청소기다. 일반 청소기보다 가격이 10~15% 가량 비싸지만, 그래도 본사에 특별 주문을 해야 할 만큼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다.
'고성능포집필터'라고도 불리는 해파필터(High Efficiency Particulate Arrestor)는 사실 가전 제품을 위해 탄생한 것은 아니었다. 1940년 대초 미국 원자력위원회가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먼지를 걸러내기 위해 만들었다. 미 국방규격(MIL)에 따르면, 헤파필터는 0.3㎛(마이크로그램)의 입자를 1회 통과시켰을 때 99.97% 이상 걸러내야 한다. 그러다 진드기 바이러스 곰팡이 등을 제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독일 가전회사 밀레가 1998년 세계 최초로 진공청소기에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헤파필터가 주목 받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에서다. 밀레코리아 관계자는 "처음에는 진드기 바이러스 곰팡이 등을 잡아 낼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피부질환 때문에 어려움을 겪거나 아기 있는 가정 위주로 제품을 찾았다"며 "최근에는 초미세먼지에 슈퍼황사까지 잦아지며 공기 질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소비층도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강변테크노마트에 따르면, 올 1분기 헤파필터 제품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30% 가량 늘었다.
초미세먼지는 대부분 지름이 머리카락 굵기의 30분의 1에 불과한 2.5㎛ 이하로 일반 필터로는 걸러내는 데 한계가 있다. 헤파필터(13등급)는 미세먼지를 거를 뿐만 아니라 옷에 붙어 있거나 기기 안으로 들어온 초미세먼지가 공기가 돌아나갈 때도 다시 빠져 나가지 않게 붙잡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가전회사들은 적용 제품을 늘리고, 등급을 올리거나 다른 필터와 함께 활용하는 등 '헤파필터' 모시기에 열심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서울 논현동 삼성디지털프라자 강남본점에 프리미엄 청소기 '모션싱크' 전용매장을 차렸다. 청소기 전용공간이 만들어진 건 이번이 처음. 삼성전자 관계자는 "프리미엄 청소기에 대한 관심도 늘고 시장 규모도 최근 3년 동안 연 평균 25% 이상 커졌다"며 "모션싱크 기술과 함께 헤파필터의 역할이 크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스텔스 로봇청소기는 7단계 청소 기능을 헤파필터로 마무리 하도록 설계했다.
LG전자는 침구청소기인 '무선 침구킹'에 헤파필터를 아예 2중으로 달았고, 영국알레르기협회와 독일 SLG로부터 미세먼지 방출 차단 99%, 99.99% 인증을 얻었다. 위니아만도 역시 '위니아 에어워셔' 프리미엄 모델에 헤파필터를 장착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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