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붓딸(당시 8세)을 학대해 숨지게 한 경북 칠곡 계모에게 항소심에서도 살인죄 적용은 어렵게 됐다. 대구지검은 항소하겠다면서도 "살인죄로 공소장을 변경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살인죄로 사형이 구형된 울산 서현이 사건도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살인죄가 인정되지 않은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건 발생 후 초동 대응에서부터 검찰의 수사와 기소 등에서 총체적 허점이 발견된 만큼 보완책을 마련하고 보강수사를 통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숨지기 전 학대 부실수사
동생인 B양이 지난해 8월 16일 숨지기 전에 자행된 계모 임모(36)씨와 친부 김모(38)씨의 가혹행위에 대해 검찰은 상해죄를 적용할 만도 했지만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검찰의 수사에서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대목은 ▦2013년 1월 B양의 왼팔 골절이 언니 A양이 꺾어서 생겼고 ▦2013년 5월 B양의 등에 입은 화상도 라면 냄비를 들고 가다 엎어서 생겼다는 점이다. 검찰은 단지 부모가 골절을 방치해 팔이 휘는 장애가 생겼고, 라면을 엎은 데 대해 폭행하는 등 학대로만 기소했고 재판부도 이를 그대로 인정했다.
이에 대해 A양 법률자문단 관계자는 "난센스에 가까운 수사 결과"라고 일축했다. 자문단 측은 "4학년짜리 언니가 1학년짜리 동생 팔을 꺾어 골절시킬 수 있는지 법의학자 등을 조사해야 하고, 거짓말탐지기 조사 등을 통해 분명히 규명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B양의 골절에 대해 임씨와 A양 등은 담임교사와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에서 조사할 때마다 "A양이 꺾었다" "자전거 타고 가다가 넘어졌다" "2층 계단에서 뛰어 내려오다 다쳤다" "침대에서 떨어져 다쳤다" 등 계속 엇갈린 진술을 했다.
라면 냄비를 들고 가다가 엎고 넘어져 등에 화상을 입었다는 것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B양은 처음 담임 교사에게는 "계모가 뜨거운 물을 부었다"고 말했다가 집에 돌아간 후 말을 바꿨다.
법률자문단 관계자는 "김양이 숨지기 이전 폭행에 대해 상해죄로 기소했어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똑같이 의붓딸을 폭행해 사망하게 만들었지만 칠곡 계모의 형량(징역 10년)이 울산 계모(징역 15년)보다 낮았던 이유 중 하나가 검찰이 계모의 의붓딸 상해 혐의를 입증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수사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경찰이 지난해 8월 16일 숨진 B양 사건에 대해 2개월 가까운 조사 끝에 A양을 주범, 계모 임씨를 공범으로 검찰에 송치한 것은 가장 결정적인 초동 수사의 잘못으로 꼽힌다. 당시 경찰은 학교나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상담기록 등을 통해 A양 자매가 지속적으로 학대당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A양을 가해 부모와 함께 방치했고, "동생을 죽였다"는 진술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A양은 지난 2월 초 부모와 분리되고 나서야 말문을 열었다. 격리조치가 왜 필요한지 모르는 경찰의 인식이 절망적일 정도다. 전문가들은 "검찰이 경찰 수사단계부터 피해자를 가해자와 격리하도록 지휘하거나 송치 이후에라도 격리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치 8일만에 기소한 검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시 A양을 가해 부모에게 내맡겼을 뿐만 아니라, 뒤늦게 심리적 안정을 찾은 A양이 학대 사실을 진술했지만 나서지 않았다. 지난달 19일 비공개심리 후 A양으로부터 "(계모가)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아버지가 동생이 죽어가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었다"는 진술이 나왔고, A양 보호자가 이를 조사해 줄 것을 검찰에 2차례나 요청했지만 거부했다. 여론이 들썩이자 이에 떠밀려 지난 10일에야 친부 자택을 압수수색했을 뿐이다. 하지만 사실규명이 가능할지, 규명할 의지가 있는지 미지수다.
이명숙 한국여성변호인회 회장은 "보강수사를 통해 항소심에서는 계모의 상해혐의를 추가하는 것은 물론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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