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를 기다리다가 '개집표기'라는 단어를 보았다. 생수를 마시고 있던 나는 푸, 물을 뿜을 뻔 했다. 개집-표기. 이렇게 끊어 읽었으니 웃길 수밖에. 개집이 개집이지 개집을 어떻게 표기하라구. 한 번 더 보고 나서야 '개표기'와 '집표기'를 함께 일컫는 단어라는 걸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비슷한 경험이 여러 번 있다. 김동리의 소설 제목 '흥남철수'는 한국전쟁 때 '흥남'에서 '철수'하던 사건을 가리키는데, 나는 오랫동안 '흥남에 사는 철수'라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로 알고 있었다. 지금도 '철수'라는 이름을 대할라치면 '흥남철수'가 생각난다. 더 오래 전의 기억을 들추면 '열중쉬어'가 있다. 운동장에서 조회를 설 때 '열중쉬엇', '차렷', 구령에 따라 뒷짐을 졌다 풀었다 하면서 늘 궁금했다. 열중하면서 쉬라니. 어쩌라는 거지? '열중쉬어'가 열(列)을 맞춘 가운데(中) 편한 자세를 취하라는 뜻이라는 건 아주 한참 후에야 알았다. 소리만으로, 혹은 한글문자만으로는 뜻이 명확히 새겨지지 않아 나타나는 착오.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할 우리말의 골칫거리 중 하나인 것도 같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런 착오가 약간 즐겁기도 하다. 개집도 떠올려보고 흥남에 사는 철수도 상상해 보고 열중하면서 쉬는 방법에 대해서도 머리를 굴려보니 이 또한 묘미라면 묘미일 수 있지 않을까. '아기다리고기다리던'은 띄어쓰는 게 맞지만, '아기다리'와 '고기다리'로 리듬을 타는 것 또한 나름의 재미니까.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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