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재 대표는 충무로의 스타 작가였다. '실미도'로 첫 1,000만 관객을 기록했고 '공공의 적2'도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비겁한 변명입니다'('실미도')라는 명대사가 그의 펜에서 비롯됐다. 2000년대 중반 시나리오 작가로는 드물게 편당 1억원을 받아 눈길을 모았다. 방송작가와 만화스토리작가 등을 거치며 쌓은 재담이 무기였다. 그는 2008년 올댓스토리를 설립하며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다. 식품, 약품, 출판, 드라마, 영화 등 전방위로 이야기를 팔고 있다.
8일 찾은 서울 삼성동 그의 사무실 벽은 두 개의 영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한쪽에는 치약과 생수, 비타민 등이 가지런히 정렬돼 있었고 그 옆으로 책과 DVD가 책장에 꽂혀있었다. 양쪽 다 올댓스토리의 생산품이었다. 이야기로는 무엇이든 만들어 파는 올댓스토리의 과거와 현재가 엿보였다.
잘나가던 시나리오 작가였는데 왜 이야기 회사를 창업했나.
"올댓스토리 설립 시기는 추계예술대 영상시나리오 전공 교수가 되고 난 뒤 첫 제자를 졸업시킬 때였다. 제자들이 성인으로서 자기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데 어떻게 사회생활을 시작하라는 답을 찾아줄 수 없었다. 이들의 재능을 관리해주고 싶었고 회사가 필요했다."
이야기로 상품까지 개발한다니 이해가 잘 안 된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야기 만드는 방법론으로 상품을 개발한다. 상품이 소비자에게 전하고 싶은 가치는 이야기의 주제라 할 수 있다. 가치를 입증할 물질은 소재에 해당한다. 독자나 관객이 절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하는 플롯을 상품 개발에 그대로 적용한다. 상품을 완성한 뒤 사람들에게 그 상품을 널리 알리는 일반적인 마케팅과 다르다. 우리는 개발 단계부터 상품에 이야기를 입혀 마케팅을 한다고 보면 된다."
마케팅과 경영에 대한 공부도 필요할 듯 한데.
"대학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다. 경영 환경이 자주 바뀌고 경영이론도 시장이 변한 뒤에야 나오니 별 쓸모가 없다 생각해 경영 쪽 공부는 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활용한 우리 사업은 딱히 따라 할 모델이 없었다. 그저 난 우리 식구(사원) 하나하나가 가장 재미있게 일하고 이를 같이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밖에 없다. 창의적인 인재 배출이 채찍과 당근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 의미의 이야기 생산도 계속 하는가.
"그렇다. 지금 어린이 뮤지컬을 공동 기획하고 있다. TV애니메이션 시리즈와 5분짜리 드라마도 준비 중이다. 학습만화로 유명한 은 2010년부터 우리가 함께 작업하고 있다. 우리가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면서 1년에 한 권 나오던 책이 네 권으로 늘었다. 시나리오 컨설팅과 닥터링도 계속 하고 있다. 시나리오의 전반적인 유기성이 떨어지거나 부족한 부분을 진단하고 아이디어를 제공(닥터링)한다. 시나리오가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곁들이면 컨설팅이 된다. 내가 집필한 드라마도 내년에 선보일 예정이다."
'이야기 회사'의 근무 방식이 다른 회사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
"출퇴근 시간은 직원 각자가 알아서 조정한다. 팀장이 팀원 성과를 평가하고 급여도 팀 내부에서 정한다. 1년에 '절대 카드'라는 걸 직원들에게 2장 발급한다. 죽어도 회사 가기 싫은 날엔 거짓말 할 필요 없이 이 카드를 찢은 뒤 '카톡방'(메신저 프로그램을 이용한 집단 대화 자리)에 사진을 찍어 올리면 된다. 아무도 왜 쉬었냐 물으면 안 된다. 그래서 '절대 카드'다."
한국 이야기 산업의 문제점과 장점은 무엇인가.
"한국은 최초 창작자의 권리를 종종 무시한다. 10년 전쯤 만난 할리우드 영화 '맨인블랙'의 시나리오 작가는 자기가 쓴 글 중 영화 속에 남은 건 네 줄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각색 과정에서 첫 시나리오 내용이 많이 빠졌는데도 권리를 인정 받은 것이다. 국내에선 '걔 아무 것도 한 것 없어, 내가 다 했어' 이런 말을 함부로 한다. 초고를 수십 번 고쳐 써서 원고를 완성하는 필력과 창의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별개다. 한국 사회의 경쟁이 치열해서 그런지 국내 이야기들은 응축력 있고 에너지도 넘친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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