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국회의원들이 구 소련 해체의 불법성과 그 책임을 물어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을 검찰에 고발했다.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와 러시아 영문매체 러시아투데이 등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 하원(국가 두마) 여야 의원 5명은 "국민들의 뜻을 거스르고 소련 붕괴를 이끈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을 포함한 옛 소련 정부 인사들을 조사해 달라"는 취지의 서한을 유리 차이카 검찰총장에게 전달했다. 이 서한은 집권 여당인 통합러시아당 의원 2명, 최대 야당인 공산당 의원 2명, 극우민족주의 성향 자유민주당 의원 1명이 작성했다.
서한에 서명한 예브게니 피오도로프 통합러시아당 의원은 "소련 붕괴는 23년간 평가하지 못한 이슈였다"며 "구 소련 시절 진행된 국가 해방 운동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 통일을 기점으로 동구권에 자유화 바람이 불었던 1991년 3월 소련은 연방 해체 여부를 놓고 실시한 주민투표에서 국민 78%가 연방 유지에 찬성했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8일 보리스 옐친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 레오니트 크라프축 우크라이나 대통령, 스타니슬라프 슈슈케비치 벨라루스 최고회의 의장 등이 소련을 해체하고, 독립국가연합(CIS)을 창설하는 내용을 담은 벨로베좌 협정에 서명했다. 그 후 보름도 안된 12월 21일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8개 공화국이 협정에 가세하며 해체 수순을 밟았다. 고르바초프는 당시 "이 협정이 소련 정부의 비준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고 버텼지만, 러시아를 포함한 여러 공화국이 차례로 비준하자 결국 해체를 승인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12월 25일 대통령직에서 사임했고, 12월 31일 소련은 공식적으로 해체됐다.
소련 붕괴 23년이 지난 시점에 러시아가 소련 해체의 책임을 따지고 나선 것은 크림공화국 합병으로 자신감을 얻은 러시아가 슈퍼파워를 지녔던 옛 제국의 향수에 젖어 들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소련 붕괴를 "20세기 최대의 재앙"으로 표현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옛소련권을 통합해 맹주가 되겠다는 열의가 강하다.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고 크림공화국을 합병한 3월 80%로 급등했다.
WP는 "1월의 러시아 국민 여론조사에서 55세 이상 응답자의 86%가 소련의 몰락을 후회한 반면 25~39세 젊은 주민들은 37%만이 그런 감정을 느꼈다"며 "노년층이 더욱 오랫동안 소련을 그리워해왔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실제로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기소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푸틴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들을 뒤쫓는 데 거의 관심이 없고, 만약 그럴 경우 결국 언젠가 본인도 그렇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검찰 고발 움직임에 대해 고르바초프는 "성급한 결정으로 논평할 가치도 없다"며 "그런 논리라면 당시 소련 붕괴를 지지한 최고회의 의원 모두를 열차에 태워 강제노동수용소가 있는 러시아 극동 마가단에 보내야 한다"고 비꼬았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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