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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모두 '그 입 다물라!'

입력
2014.04.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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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을 비판하면서 양비론(兩非論)처럼 무책임한 건 없다. 한 사안에서 여당도 잘못하고 야당도 잘못했다는 건 어찌 보면 양쪽을 의식한 비겁한 비판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지적을 받더라도 이번 일만큼은 여야 모두를 욕하지 않을 수 없다. 기초선거 무공천 번복 해프닝이다.

기초선거 무공천 공약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3명의 후보가 공히 내걸었다. 이들은 상대 후보보다 자신이 먼저 내건 대국민 약속임을 내세우기도 했다. 여의도 발 '블랙코미디'의 서막이다.

새누리당은 지난해 4월 경기 가평군수와 경남 함양군수 선거에서 공천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무공천 공약을 지켰다며 떠들썩하게 홍보하기도 했다. 선수를 빼앗긴 민주통합당도 뒤질세라 지난해 7월 전 당원 14만7,000여명의 투표를 통해 68%의 찬성으로 기초선거 공천 폐지를 당론으로 확정하면서 여당을 압박했다. 여당이 수세로 몰린 게 코미디의 제2막이다.

이후 여당 내부에서 '정당 공천은 책임정치 실현을 위한 필수 요소'라는 주장이 나오더니 올해 초 슬그머니 무공천 방침을 철회했다. 대통령의 사과 요구에 대해서도 "공직선거법 개정 문제이기에 대통령이 아니라 여야가 합의할 사안"이라고 둘러댔다. 여야 합의 사안을 대선 과정에서는 왜 버젓이 공약했는지 모를 일이다.

코미디 3막은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의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과정이다. 두 대표는 통합의 최대 명분은 무공천이고 그게 곧 새정치란 주장을 거듭했다. 안 대표는 "무공천은 잠시 죽지만 영원히 사는 길"이라면서 청와대로 찾아가 대통령 면담 요청까지 했다. 씁쓸한 결말까지는 새정치연합의 창당부터 불과 보름 여 밖에 걸리지 않았다. 안 대표는 국민과 당원 뜻에 따르겠다고 말을 바꿨고, 결국 10일 무공천 방침이 철회됐다. 그것도 지난해 7월 무공천을 찬성한 당원들이 이번엔 대거 무공천 철회 쪽에 표를 던졌다. 여야 지도부에서 당원들까지 모두 함께 열연한 여의도 발 블랙코미디의 전말이다.

박 대통령은 공약 번복에 사과하지 않았고, 문재인 의원은 지도부 의중과 다르게 당원 뜻을 물어야 한다고 자신의 공약에 배치되는 입장을 유지했다. 국민 기만극의 주연급이다. 안 대표는 말할 것도 없다. 자신의 사고가 시대적 흐름에서 이탈한 사실을 유심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귀결될 지 모르고 여태껏 무공천을 주장했다면 하수 정치요, 이렇게 끝날 것을 알면서도 청와대까지 찾아가는 이벤트를 벌였다면 이미지만 염두에 둔 광대 정치다.

지방선거의 정당 공천과 관련한 폐단에 대해 딱 떨어지는 해법은 없다. 무공천도 일장일단이 있기에 시대 상황에 따라 가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대개 우리와 같은 정당정치를 하는 국가에서는 정당 공천을 통한 의회민주주의가 기본이다. 물론 세계적으로도 지방정부의 자치력 강화를 위해 중앙 정당의 입김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은 나타나고 있지만, 공천 폐지를 아예 입법화했다는 나라는 들어본 적이 없다. '무공천만이 새정치'라는 주장에는 분명 어폐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처럼 지역구 국회의원의 공천권 행사로 인해 지방정부의 중앙정치 예속화가 심화한 곳도 드물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서는 어딘가 단단히 메스를 들어야 하는 상황인 건 맞다. 여야가 시간을 두고 해결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결론적으로 대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포퓰리즘 득표전에 현혹돼 앞다퉈 기초선거 무공천을 공약한 것 까지는 정치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국민 앞에 사과하고 다신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라도 해야 한다. 그게 새정치를 향한 첫걸음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새누리당은 "무공천 철회가 새정치냐"고 코웃음치고 있고, 새정치연합은 "모든 게 다 오만한 여당 탓"이라고 날을 세우고 있다. 이들에게 표를 던져야 할 국민이 안쓰럽게만 느껴진다. 여야 모두에게 부탁하는데, 제발 그 입 좀 다물라!

염영남 논설위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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