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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물·비명 가득했던 날것의 공간… 패션·관광의 중심지로 '화려한 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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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물·비명 가득했던 날것의 공간… 패션·관광의 중심지로 '화려한 가공'

입력
2014.04.1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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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돼지의 비명이 울리는 것 같다. 흥건한 핏물과 비계 덩어리가 굴러다니고, 쇠갈고리에 꿰인 커다란 살덩이들이 짐짝처럼 내던져지던 공간이다.

그런 음침했던 도살장과 축산 가공공장들이 예술의 옷을 입고 다시 태어나고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마타데로 마드리드'를 비롯해, 미국 뉴욕의 미트패킹 구역, 영국 런던의 스미스필드와 요크의 쉠블즈 등 가축들의 붉은 피와 살덩어리가 가득했던 육류 시장들이 매력적인 곳으로 거듭나 전 세계의 관광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뉴욕의 미트패킹 구역은 최근 뉴욕에서 가장 핫한 동네로 손꼽히고 있다. 거리 곳곳에 트렌디한 레스토랑, 부티크호텔, 옷가게, 클럽 등이 들어서며 맨해튼의 패션 중심지로 주목 받고 있다. 육가공 공장과 도축장이던 기존 건물의 틀을 그대로 유지한 이곳 갤러리들은 독특한 분위기로 전세계 예술가들을 유혹한다. 미트패킹 구역을 가로지르는 '하이라인 파크'는 뉴욕의 새로운 아이콘이 된 관광지다. 1930년대 미트패킹의 육류와 우유 등 화물을 수송하기 위해 세운 고가철로인데, 육류 산업이 쇠퇴한 이후 흉물로 전락했던 것을 하늘 위 공원으로 다시 만들어 놓은 곳이다.

스페인의 마타데로 마드리드는 조금 더 특별하다. 만자나레스강 남쪽 경계 도시에 위치한 이 도축장은 약 10여 년에 걸쳐 느리지만 신중한 변화를 겪었다. 192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도축장으로 쓰이던 곳이다. 모두 11개 동의 건물이 4만8,300㎡의 넓은 면적을 채우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이 오래된 건축물들이 하나씩 인상적인 문화 공간으로 바뀌더니, 결국 거대한 예술 센터로 탈바꿈했다고 보도했다. 변화는 2007년 '인터미디어'와 '디자인센터' 두 건축물의 개관으로 시작됐다. 기존의 것들을 재활용하다 보니 도살장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커튼 줄을 비롯해 거친 벽돌의 질감과 비죽 튀어나온 콘크리트와 철구조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창조적인 예술의 옷을 입은 건물들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미니멀리즘 대가들의 조각을 연상시키는 안내데스크, 바실리카 풍 건축물의 정석을 보여주는 전시회장 등은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일깨우고 있다.

음악스튜디오와 영화센터도 들어섰다. 이곳에선 라이브 공연도 펼쳐지고 지역 음악인들의 녹음 등도 진행된다. 영화센터는 보잘 것 없던 사각형 구조물 밖에서 벽돌 건축물의 밀도와 명암을 사용해 조각된 또 다른 혁신적인 장소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구조물은 '카사 델 렉터'이다. 오래된 육류 저장창고 3개를 연결한 이 곳은 탁아 시설과 전시 공간, 도서관 등으로 사용된다. 전시 공간과 도서관은 방문객들을 아름다운 하얀 빛깔로 감싸 안는다. 위쪽에서 내려와 반사된 빛으로 바실리카 양식의 기둥 구조물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책 가판대와 진열용 유리케이스 그리고 안내판들은 3차원적으로 보이도록 만들어졌다. 인테리어만큼이나 외형 역시 중요하다. 옥외 통로를 통해 만나는 베란다에선 여유 있는 휴식을 즐길 수 있다. 건축물은 시민 모두에게 자유롭게 개방된다.

한때 스페인은 마구잡이로 지어진 문화적 건축물들로 혹평을 받은 적이 있었다. 특히 발렌시아에 지어진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의 사치스러운 '예술과 과학의 도시' 건축물에서 혹평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이 젊고 유능한 건축가들이 비교적 저렴한 건축 재료를 사용해 무한한 관심을 기울인 끝에, 만들어내 마타데로는 모든 면에서 칼라트라바의 건축물과 정반대가 되었다.

우한솔 인턴기자(이화여대 언론정보학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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