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스위스 화학자 파울 헤르만 뮐러는 쓸모 없던 합성 화합물에서 획기적인 살충 효과를 발견, 인간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했다는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10여년 이 합성 화합물은 대량으로 생산돼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메틸메탄, 흔히 DDT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20세기 중반은 DDT뿐 아니라 각종 화학물질이 인류에게 다가온 복음인 양 인식되고 소비된 시대다. 1962년 봄 생물학을 전공한 조용한 성격의 작가가 을 발표하면서, 그 흐름은 극적인 반전을 맞게 된다.
당시에도 환경과 생태 보호에 대한 인식은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낭만적 성격의 이상주의에 가까웠다. 하지만 은 DDT가 동물에게 끼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관찰, 그것이 핵실험으로 말미암은 방사능 낙진의 영향과 비슷하다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대중은 경악했다. 이후 자연과 환경에 대한 의식은 점잖은 보존주의에서 시급하고 논쟁적이고 적극적인 환경주의로 변화하게 된다.
을 쓴 사람은 레이첼 카슨이라는 이름의 50대 여성 작가였다. 를 포함한 세 권의 책을 써 내 나름의 팬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전국적인 주목을 받은 적은 없었다.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서기 전 17년 간 정부 기관에서 일한 공무원이기도 했다. 하지만 발간 이후 그는 격렬한 논쟁의 중심이 됐다. 거대 기업의 끊임없는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바라지 않았던 바였을지 몰라도, 투사가 됐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를 '환경운동의 어머니'로 기억한다.
이 책은 발간 50주년을 기념해 2012년 윌리엄 사우더가 펴낸 평전이다. 카슨의 평전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것은 아니다. 린다 리어가 1997년 쓴 책이 2004년 (원제 'Rachel Carson: Witness for Nature')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나왔다. 카슨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기술한 밀도 있는 전기다. 방대한 분량의 페이지 속에 카슨의 삶을 촘촘하게 재구성했다. 이 책 (원제 'On a Father Shore: The Life and Legacy of Rachel Carson')도 평전의 성격이다. 하지만 시간 흐름에 따른 서술 방식에선 벗어나 있다.
지은이는 카슨의 생각과 작품세계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몇몇 인물과 사건, 책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카슨의 작품으로 열매 맺혔는지 과정을 추적한다. 카슨의 총체적 삶을 느끼고 싶다면 리어의 평전을, 카슨의 머릿속의 깊숙이 들여다보고 싶다면 사우더의 평전을 펴는 게 좋을 것이다.
꼼꼼한 조사를 통해 축적한 자료를 격조 있는 문장으로 써낸 이 책이 그려내는 카슨이라는 인물의 윤곽은 이렇다. 본래 매우 수줍은 성격이지만 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열정적인 사람, 그에게 환호하는 대중보다는 자연세계 속에 머물 때 한결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 지은이는 카슨이 벗과 나눈 낭만적 우정, 암으로 죽어가는 과정도 섬세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수필가의 섬세함을 지닌 과학자,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혁명적이었던 20세기의 개혁가, 누구보다 인간과 자연을 사랑한 한 인간의 얼굴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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