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안달루시아 2700명 소도시직접 민주주의·협동조합·공동경작… 자본주의에 맞선 대안 모델로 주목고르디요 시장이 30년간 이끌어 와 英언론인이 주민과 생활하며 심층 분석
여기 세상의 보편적 잣대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마을이 있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인구 2,700명의 작은 소도시 마리날레다. 1979년 이후 주민이 직접 선출한 시장 후안 마누엘 산체스 고르디요가 30년 넘게 도시를 이끌고 있다. 협동조합 형태로 올리브, 토마토, 콩 등 농작물을 기르고 가공해 살림을 꾸리는 공동 경작, 공동 분배 방식으로 운영된다. 주민 대부분은 이 농장과 공장에서 하루 여섯 시간 반 일하며 한 달에 1,200유로(약 180만원)를 받는다. 농산물의 수익이 더 생기면 이윤을 분배하기보다 재투자해 일자리를 늘린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병폐로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혁신적인 대안모델로 조명돼 왔고, 공산주의 독재라는 비난도 만만치 않게 받아왔다.
는 가디언 등에 기고하는 영국 언론인 댄 핸콕스가 마리날레다를 여러 차례 방문해 주민과 함께 생활하며 심층 분석해 내놓은 결과물이다. 저자는 직접민주주의와 협동조합의 실험적 모델로 주목 받는 이 마을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이를 위해 스페인 역사에서 안달루시아가 지니는 독특함과 이 지역 사람들의 땅과 일에 대한 집착 등 마리날레다 이해에 전제돼야 할 역사적 배경을 소개하고 마을의 지지자와 반대자 등 다양한 인물의 인터뷰를 담았다.
마리날레다에는 '공산주의 테마파크' 등 과격한 수식어가 따라 붙지만 2012년 1월 마리날레다를 처음 찾아간 저자는 "아주 소박했다. 다국적 기업 상표가 보이는 간판도 없고 광고판도 없었다. 현대 자본주의가 침입한 흔적이 없었다"고 마을의 첫인상을 전했다.
그는 공산주의 이념으로 이 마을을 평가하는 것은 스페인 근현대사에 대한 몰이해를 바탕으로 한 단편적인 시각이라고 강조한다. 마리날레다가 속한 안달루시아는 스페인 역사에서 줄곧 빈곤과 반란, 대지주의 독점적 토지 소유, 중앙정부의 소외와 배제 등으로 알려진 곳이다. 따라서 저항은 배고픔에서 비롯됐다. 산체스 고르디요가 시장으로 선출되고 생존의 위협을 느낀 주민들은 고르디요 시장의 지시로 직접 행동에 나선다. 1980년 이 지역의 실업률이 60%를 넘어서자 주민 700명이 9일 간 단식 투쟁, 즉 '절대적인 빈곤을 전국에 알리는 굶주림을 끝장내기 위한 굶주림'에 돌입해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얻어 냈다. 이들은 정부 보조금에 만족하지 않고 10년 이상 귀족 소유의 땅을 점거하고 투쟁한 끝에 공유지를 얻어 냈다.
책은 이 공동체의 핵심인 고르디요를 소개하는데 상당 분량을 할애한다. 저자가 마리날레다를 처음 방문한 목적이 고르디요 인터뷰였던 만큼 그가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를 상세히 소개하고 주민의 평가를 더한다. 마거릿 대처가 영국 총리가 된 해에 시장으로 선출된 그는 "대안은 없다"며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외친 대처와 달리 더 나은 세상을 창조할 꿈을 이야기하며 유명해졌다. 2012년 8월에는 "수탈자를 수탈한다"며 슈퍼마켓에서 턴 식료품을 푸드뱅크 등에 보내 '로빈 후드'라는 별명을 얻었다.
저자는 그저 '괴짜 시장이 다스리는 이상한 작은 공산주의 마을'로 치부하기 쉬운 마리날레다를 직접 체험함으로써 끊임 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 민초의 생명력을 이야기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를 넘는 대안 모델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마리날레다에 세계 각지의 시선이 쏠리고 있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마리날레다 모델을 모든 지역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실업과 주택문제, 빈부격차 등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전 지구적 사회 문제에 대처한 마을 사람들의 도전 정신은 눈여겨볼 만하다. 현재 한국에서도 관심을 모으고 있는 협동조합, 대안 주거, 고용 문제 등을 앞서 실험한 마리날레다의 사회적 상상력 역시 되새겨 볼 만한 하다.
저자가 시장 집무실에 적힌 '평화를 추구하는 유토피아'라는 문구에 대해 고르디요에게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우리가 미래에 원하는 것을 지금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내일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오늘 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가능해지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수 있는 본보기가 됩니다. 다른 사회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본보기 말입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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