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3기 1차 회의에서 권력지각 변동이 미풍에 그친 가운데 유독 주목되는 인물이 있다. 원자력공업상(장관)에 임명된 리제선(76)이다.
원자력공업성은 지난해 4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경제ㆍ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천명한 직후 만들어진 내각 부처. 당시 북한은 "원자력 공업을 현대화ㆍ과학화하고 핵물질의 생산을 늘리며, 자립적 핵동력 공업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며 원자력공업성 신설 이유를 밝혔다. 다만 북한은 원자력공업성 신설 발표 이후 활동은 물론 책임자도 공개하지 않았고, 1년 만에 리제선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북한 원자력계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리제선의 발탁은 예고된 측면이 있다. 그는 1997년부터 줄곧 핵프로그램 등 북한의 원자력 정책을 총괄했던 원자력총국의 수장을 맡아왔다. 원자력공업성 역시 원자력총국을 확대ㆍ개편한 조직이다. 우리로 치면 청이 부로 승격됐고, 청장이 장관으로 승진한 셈이다.
리제선은 이미 국제사회에 꽤 알려져 있다. 그는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불거진 2003년 당시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에게 편지를 보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겠다"고 최후 통첩을 날렸다. 2009년엔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따른 유엔 안보리의 제재 대상에도 포함됐다.
그러나 대외 노출빈도는 거의 없는 편이다. 리제선은 1997년 8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북한 신포에서 개최한 경수로 사업 착공식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고, 2002년 3월 원자핵연구소성원국 정부 전권 대표자 회의 참석차 러시아를 방문한 게 전부다. 공개활동도 드물어 2011년 김정일의 장의위원에 이름을 올린 정도다.
그는 김일성종합대 핵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러시아에 유학해 핵 연구를 한 전형적인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다. 핵실험과 핵연료 관리, 영변ㆍ평양의 핵연구소 운영 등 모든 북한 핵개발의 실무가 그의 손을 거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지난 수 십 년 동안 북한 핵을 이끌어온 사람으로 핵개발의 정치적 상징성과 (핵 일꾼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승진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또한 북한이 경제ㆍ핵무력 병진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신호로도 읽힌다.
대북 소식통은 "노동당 군수담당비서인 박도춘을 중심으로 당과 군부가 핵개발 정책을 입안하면 군수경제를 담당하는 국방위원 조춘룡이 자금ㆍ물자를 지원하고, 리제선이 계획을 실행하는 역할 분담 구조로 핵 도발을 진두 지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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