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과 제주 양파 재배 농민들은 지난 겨울부터 정성껏 가꾼 양파밭을 조만간 갈아 엎어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과잉공급 우려와 재고량 급증으로 가격이 평년 대비 44%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햇양파의 시장 출하를 막기 위해 전남과 제주도 재배 농가를 대상으로 산지 폐기 신청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농림부는 다음 주부터 해당 농가의 양파를 묻어버릴 계획이다. 올해 양파 생산량은 144만4,800톤으로 평년보다 7% 늘 것으로 전망된다. 재고량은 6만7,000톤으로 24% 늘었다. 양파 생산량이 증가한 것은 재배면적이 2억1,000만㎡로 3.8% 증가하고 겨울이 따뜻해 풍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해마다 농산물 가격 급등락이 반복되자,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정확한 생산력을 예측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이중 기상청의 기후 예측 능력을 농산물 생산량 예측에 결합하는 '농업기상(農業氣象)'이 대표적 시도다.
10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배추 무 양파 마늘 고추 등 5대 채소의 생산량이 평년 대비 7~34% 늘면서 가락도매시장 기준 가격이 16~75%까지 급락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소비촉진 캠페인과 정부비축용 수매 등을 통해 공급량을 줄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 반대로 2012년에는 냉해로 배추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가격이 전년 대비 60% 폭등하자 중국에서 배추를 수입해 공급을 늘렸다. 농업 전문가들은 국내 농산물 수요는 거의 일정한 만큼 공급량 예측만 정확히 할 수 있다면 농산물 가격 안정을 실현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농산물 생산량은 기후여건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정확한 생산량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기상청의 기후예측 능력을 농산물 생산 예측과 연계해야 한다. 이 분야가 바로 농업기상이다. 농업기상은 ▦농경지에서 발생하는 모든 기상조건들을 관측하고 예측 ▦작황 정보와 작물의 생산량 예측 ▦나아가 최적생산량 등을 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농업 선진국들은 이미 방대한 과거 작물 생산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양한 기상 자료들을 변수로 넣고 시뮬레이션을 거쳐 작물별 생산량을 예측해 농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미국은 기상청과 민간 사설기구에서 농민들을 위해 농촌지역을 포함해 1㎢ 단위로 상세기상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또 농업부 내에 농업기상 전문가와 농업전문가가 모여서 작황 예측을 전문으로 하는 기구가 상설화돼 있다.
유럽연합(EU)은 농업기상 등을 활용해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의 중요 작물에 대한 수요예측 기능을 수행하는 '농업자원감시센터'(MARSㆍMonitouring Agricultural Resources)라는 합동연구소가 있다. 일본은 농업환경기술연구소 농업기후자원과에서 12명의 전담인력이 농업기상을 연구하고 있다. 쌀 산업 시장이 큰 일본은 벼 생산량에 중요한 변수인 논의 수온을 예측하는 모델을 구축했을 정도다.
반면 우리나라 농업기상은 단편적인 자료와 경험에 의지해 품목별 생산량을 예측하고 초보수준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농업기상에 대한 투자가 구색 맞추기 수준이고 농촌진흥청 기상청 등 유관 부처 및 기관 간 업무공조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과거 2010년 기상청 농촌진흥청 산림청 서울대가 과학적 작물 생산 예측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협약을 맺고 국가농림기상센터를 개소했다. 그러나 예산 당국의 인식 부족 등으로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2011년 국가농림기상센터가 '차세대 도시농림 융합 스마트 기상서비스 개발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농업기상 예산1,000억원을 신청했으나, 예산당국은 확실한 경제적 편익이 기대되지 않는다며 예산을 100억원으로 대폭 삭감돼 사실상 사업중단 상태다. 반면 1,500억원이었던 도시기상 예산은 900억원이 확보됐다.
이 같은 당국의 몰이해 속에서 우리나라 농업기상 연구는 농촌진흥청 기후변화생태과 내 농업기상연구실 인력 4명이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올해부터 4년간 30억원 예산을 들여 진행하는 '기상위험 조기경보 서비스 체계 구축'을 추진하는 중이다. 이 체계는 1~10일간의 날씨 예보를 분석해 농작물에 냉해 등의 피해 가능성 여부를 농가에 알려주는 것으로 농작물 수확량을 중장기적으로 예상하는 것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
심교문 농촌진흥청 박사는 "생물환경 토양환경 기상환경의 3대 농업환경 중 기상환경에 그 동안 소홀했다"며 "기후변화 시대에 맞춰 인력 확충 등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광수 서울대 식물생산과학부 교수는 "농업특성상 1개월 이상 중장기 예보의 정확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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