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산물은 공산품과 달리 유통단계가 많고 복잡하다. 대부분의 소매상들이 영세하고 넓은 지역에 퍼져 있는 데다 소비자들의 1회당 구매량이 크지 않다는 특성 때문이다. 생산 기간이 길고 기후에 민감해 해마다 공급물량의 진폭이 큰 반면 수요 변화는 거의 없다는 점도 유통 과정이 복잡해진 원인으로 꼽힌다.
농가 입장에선 직접 소매상에 공급을 하는 것보다 가격이 낮게 받더라도 산지의 중간 유통상에 선금을 받고 유통을 맡기는 편이 더 안전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중간 유통 단계를 없애고 산지와 소비자가 직접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 당장 농축산물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우선 생산자가 소비자와 직접 거래를 할 경우 오히려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영세한 소매상들에게 산지 직거래를 강요할 경우 매입 실패 등으로 인한 위험비용을 원가에 반영해 판매가격이 높아지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권승구 동국대 식품산업관리학과 교수는 "산지 도매상들이 중간에서 대량 매입을 통해 농가의 위험 부담을 줄여주는 순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며 "무조건 유통단계를 줄이면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는 식의 접근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산지 농가의 조직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산지 농가들을 묶어내서 규모화를 유도하고 시장대응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출하와 자체 포장·물류 시설을 만들고 대형 직거래 장터나 생협을 통해 소매상에 직접 공급을 하면 자연스럽게 유통 단계가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구 국가들의 경우 농가들이 농협이나 민간 영농조합을 통해 조직화가 돼 있어 중간상들의 일방적인 밭떼기에 휘둘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당장 실현하기엔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농가 조직화 과제가 제기된 것은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일부 지역의 경우 수천 가구 단위의 영농조합이 생기는 등 성과가 있었지만, 농민들은 영세하고 노령 가구가 대부분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의미 있는 결실을 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부도 이 같은 현실을 인정하고 유통단계의 투명화와 효율성을 높이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직거래 장터나 농산물 사이버 직거래 등을 활성화해 대형마트나 도매상들이 독과점하고 하고 있는 시장에 가격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소매상과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농산물 수급조절위원회 개최를 통해 산지 도매상들의 수급 정보 독점을 막는 시도 역시 이 같은 정책의 일환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단순히 유통 구조를 몇 단계 축소하겠다는 식의 계획은 실효성도 없고 국내 농가의 현실에도 맞지 않다"며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독과점 구조 등의 혁파를 통해 가격 현실화를 유도하는 게 우선적인 과제"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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