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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의 우물에서 하늘보기] <7> 섬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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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의 우물에서 하늘보기] <7> 섬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

입력
2014.04.10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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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밀실… 때론 애국심의 상징으로 투영되기도섬에도 다른 세상과 마찬가지로 욕망과 갈등이 존재사람들은 누구나 상징적 세계를 찾고 있기에제 사는 곳이 상징이 되면 문득 불편함을 느끼는 듯…

내가 살던 섬에서는 동학농민전쟁 시기를 '갑오년 댕구시절'이라고 불렀다. 댕구는 조선시대의 화포인 대완구에서 온 말일 텐데, 말의 생명이 길어서 한국동란 때 미군의 함포 소리도 섬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댕구소리였다. 섬은 댕구시절의 싸움터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와 관련된 믿기 어려운 몇 가지 전설은 반세기도 더 후에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옆 마을의 어떤 어른은 육지로 나가 그 전투에 참여하였으나 패주하던 끝에 포로로 잡혔다. 그는 사형이 집행되기 전날 밤 옥중에서 '적벽가'를 완창했다. 노랫소리가 동헌에 울렸고, 감동을 받은 현감이 그를 풀어주었다. 또 한 사람은 같은 처지에서 형장에 끌려가 참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 사람의 잘린 목에서 솟아오른 피가 그의 온몸에 쏟아졌다. 그는 꼿꼿이 고개를 들고 소리쳤다. "이놈아, 위업은 못 이루었어도 죽을 때는 깨끗이 죽어야지." 처형을 관장하던 관리가 그 기개를 가상히 여겨 그를 방면하였다. 할아버지가 누구누구네 영감이라고 그들의 이름까지 언급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전설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우리 집안은 댕구시절에 소를 한 마리 잃었다. 동학의 패잔병 여남은 명이 초란이패라고 불리는 광대들과 함께 섬의 산 속에 피신해 있었다. 그들은 광대들이 마을을 돌며 걷어간 곡식으로 연명하며 때로는 농가도 습격했다. 열다섯 살 소년이던 할아버지가 소를 산기슭에 매어두고 서당에서 공부를 하고 다시 가보니 칼에 잘린 고삐만 남아 있었다. 얼마 후 산사람들과 초란이패는 섬에서 가장 큰 배를 탈취해서 바다로 떠났다. 내 고향 섬은 그 무렵부터 세상에 발붙일 수 없는 사람들이 몸을 의탁하거나 숨기는 자리가 되었다.

나는 방학이면 보름 정도를 외가에서 살았다. 그 마을에 옥상이라는 중년남자가 있었다. 아마도 옥씨를 일본식으로 이른 말일 것이다. 그는 마을 유력자의 집에서 새경도 없이 한 해에 옷 두 벌을 받고 머슴으로 일했다.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아내가 외간남자와 사통하는 것을 보고 사방을 떠돌다가 섬으로 들어왔다는 말도 있고, 그 남녀를 죽이고 피신해 있는 신세라는 말도 있었다. 돌이켜 보면 첫 번째 '염전노예'라고 할 만도 한데, 주인집에서 염전을 경영하지 않았기에 염전에서 일한 적은 없으며, 그를 노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인물됨이 변변하고 유식해서 주인집에서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는 밤마다 외가의 사랑방에 와서 마을 사람들이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옛날이야기를 했다. 석순의 종, 원효의 해골, 경문왕의 당나귀 귀 등, 나는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들을 뒷날 '삼국유사'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섬은 솟대도 아니고 악마의 노역장도 아니다. 염전노예 사건 같은 것은 인권 개념이 전혀 없는 업주가 열악한 일터에서 공공권력의 눈을 피해 벌인 특수한 사안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지난 시대에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을 불러 일을 시키고 밥이나 먹여주면서 선심을 쓴다고 생각하던 폐습이 외지인들을 상대로 변형되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이 그 문화적 배경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섬사람들은 섬을 특별한 곳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세상과 마찬가지로 욕망이 있고 갈등이 있다. 다만 친한 사람들이 더 친해지기 쉽고 원수 진 사람들 간에 그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기 쉬운 곳이다. 사람들은 인환의 거리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자리가 있기를 바라고 자기 마음처럼 외로운 땅이 있어 자기를 기다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시 속의 섬일 뿐이다.

정현종의 시 '섬'은 두 행으로 끝나는 짧은 시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 시를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이 시를 외우고 있지만, 여기서 '섬'이 무엇을 뜻하는지 확연히 이해된 적은 없다. 내가 어느 서예가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 집의 필통에 이 시가 새겨져 있었다. 잘 만든 도자기 필통이다. 그 필통이 놓인 다탁을 사이에 두고 주인과 내가 마주 앉자, 우리는 마치 이 시를 주제로 한 설치미술품처럼 느껴졌다. 내가 저 사람을 만나려면 섬인 필통을 징검다리로 삼아야 할 것인가. 아니, 저 사람도 섬으로 올 것이니 섬은 경유점이 아니라 목적지다. 다만 이 만남의 자리가 들판이나 광장이 아니란 것은 이상하다. 나도 고독하고 저 사람도 고독해서, 그 만남 또한 고독한 성질을 지닌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는 문득 반발한다. 그렇다면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처지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서 고쳐 생각한다. 사람들?섬처럼 떨어져 있지 않다. 그들은 서로 만나고 생각과 감정을 서로 교환한다. 그러나 그들이 완전히 만나는 것은 아니다. 저마다 끝까지 털어놓지 못하는 어떤 마음의 조각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사람들 사이에 고독한 섬을 만들고 사람들을 고독하게 한다. 그 섬에 발을 들여놓을 수만 있다면 사람과 사람은 완전히 만날 수 있을 터인데 사람들은 거기에 가고 싶어 하면서도 쉽게 가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서 또 예의 섬 소년 신경증이 발작하여 똑같은 질문을 늘어놓게 한다. 그렇다면 섬에 사는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화평하거나 절대적으로 고독하다는 말인가. 어쩌면 시를 더 단순하게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시인은 바다에 떠 있는 섬을 바라보며, 다른 해안에서 그 섬을 바라볼 사람을 생각하고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또 조용하게 대꾸한다. 섬의 기슭에도 이쪽저쪽 건너 편 해안을 바라보는 사람이 서 있을 텐데…….정현종의 과 관련된 내 비극은, 적어도 섬에 관한 한, 남들이 상징이나 비유로 받아들이는 말에 늘 공연한 사실을 들이대려는 어떤 강박증에 있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서던가, 유치환의 시 '울릉도'를 읽었을 때도 찬탄하는 마음에 억울한 마음이 조금 섞여 있었다. '울릉도'는 '섬'보다 길고 유려한 시이지만, 시 의식의 관점에서 본다면 훨씬 더 소박하다. 이 시가 실린 시집 는 1948년에 발간되었다.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금수로 구비쳐 내리던

장백의 멧부리 방울 뛰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

창망한 물굽이에

금시에 지워질 듯 근심스리 떠 있기에

동해 쪽빛 바람에

항시 사념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지나 새나 뭍으로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출렁이는 풍랑따라

밀리어 밀리어 오는 듯도 하건만

멀리 조국의 사직의

어지러운 소식이 들려올 적마다

어린 마음의 미칠 수 없음이

아아 이렇게도 간절함이여.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시에서 이 나라의 섬을 대표하는 '울릉도'는 애국적이다. 이 외로운 섬은 조국과 사직을 걱정한다. 어쩌면 이 애국은 "국토의 애달픈 막내"의 심정이기에 늘 부족하고 어느 정도는 운명적으로 강요된 것일 수도 있다. 청마는 이 시를 착상할 때도, 쓸 때도 분명 지도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심해선 밖"이란 말이나 "금시에 지워질 듯 근심스리 떠" 있다는 말이 이를 말해 준다. "쉴 새 없이 출렁이는 풍랑따라 / 밀리어 밀리어 오는 듯도 하건만"이란 시구는 그 지도가 별로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하게도 한다. 지도는 많은 것을 상념하게 하지만, 작은 지도 속에 그려진 작은 섬만큼 추상적인 것도 드물다. 좁쌀만한 점이나 폐쇄곡선으로 그려진 섬은 산정을 표시하는 검은 삼각형보다 더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어떤 사람의 눈에 그것은 땅과 바다만 있어야 할 세계의 그림에서 잘못 복사한 사진의 '노이즈'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지도 속의 섬은 해가 뜰 때나 질 때나 "뭍으로 뭍으로만" 다가와 저 자신을 지워버리려고 한다. 울릉도의 애국심은 그래서 저 '노이즈'를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의 마음이 거꾸로 투영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나에게 이 유려하고도 애달픈 시를 폄하하거나 청마를 비난하려는 뜻이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울릉도'는 말 그대로 상징일 뿐이며, 어수선한 해방정국에서 조국의 운명을 염려하면서도 의지에 힘이 못 미치는 시인 그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는 시적 상관물일 뿐이다. 다만 내가 어린 시절을 한 점 상징 속에서 살았다는 것이 자못 황당하다고 말하려던 것인데, 사실은 유치환도 섬사람이다. 그는 거제도에서 태어났다. 거제도는 울릉도보다 훨씬 큰 섬이다. 철이 들기 전에 뭍으로 옮겨 살았으며, '울릉도'를 쓸 당시 이미 저명한 지식인이었던 유치환의 경우는 더욱 그렇겠지만, 예사 섬사람들도 자신이 섬사람인 것을 보통은 잊고 살며, '호젓한 섬'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런 섬이 어디에 따로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자주 섬을 떠나고 싶어 하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제가 살던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만큼만 떠나고 싶어 한다. 그들도 어떤 상징적 세계를 찾고 있지만, 아니 상징적 세계를 찾고 있기에, 제가 사는 곳이 상징이 되는 것을 보고는 적지 않게 놀라며 불편하게 여길 것이다.

상징은 온갖 서사에 들어가 빛나는 성좌를 구성하지만 상징에서 서사가 나오지는 않는다. 넓은 공간에서 어떤 자리가 지녔을 성싶은 이상한 기운은 그 자리가 폐쇄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 때가 많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그것이 아무리 특별한 것이어도, 사건은 거기서 시작해서 거기서 끝난다. 사건은 일어나지 않은 사건과 다를 것이 없다. 섬이 어떤 상징이 될 ㏊?그렇다. 우리 시대의 영화가 그 점을 웅변한다. 김학민 감독의 영화 (2007)에서는 섬 주민 17명 전원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서사는 밀실추리극의 플롯을 그대로 밟는다. 섬은 밀실에 해당한다. 사건의 발단은 어느 제약회사의 신약개발을 위한 음모에서 비롯한 것으로 밝혀지지만, 이야기 속의 제약회사도 그 이야기를 꾸민 감독도 섬을 처음부터 하나의 폐쇄적 상징으로 여겼다는 점에서 사건의 원인과 결과가 모두 섬에 있는 것이나 같다. 제약회사의 음모는 그 밀실을 들여다보기 위한 작은 창구에 지나지 않는다.

장철수 감독의 영화 (2010)에서는 그 점이 더욱 극명하다. 가족의 학대를 받던 여자가 그 가족들의 목을 자르고, 학대를 방조했거나 방관했던 섬 주민 전체를 살해한다. 김복남에게 원한을 품게 한 것도 폐쇄된 사회의 풍속이며, 그 끔찍한 연쇄살인을 가능하게 한 것도 섬의 폐쇄된 환경이다. 김복남은 마침내 섬을 벗어나서도 살인을 저지르지만 그녀의 마지막 범행 장소인 포구의 파출소나 그녀가 숨을 거둔 파출소의 유치장은 경계가 약간 확대된 섬일 뿐이다. 살인사건의 전말을 목도한 김복남의 친구가 이를 계기로 실존적 결단을 내려 삶의 태도를 바꾸지만, 이 교훈 역시 섬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구일 뿐이다. 서사는 섬을 벗어나지 않는다. 폐곡선 속에서 서사는 지워진다. 울릉도의 "아아 이렇게도 간절함"이 어떤 서사를 만들어도 그것은 자체 안에서 소멸된다. 오직 창구 하나를 열어놓고 섬은 상징이 되고 상징은 섬이 된다. 사람들은 그 섬에 가고 싶어 하지만 누구도 상징 속에 살러 갈 수는 없다.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ㆍ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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