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 알베르 카뮈의 에서 절정의 장면은 주인공 뫼르소가 살인하는 대목이다. 기존 번역본에는 아랍인에게 총을 쏜 동기가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로 돼있다. 최근 새 번역본 을 펴낸 작가 이정서(필명)씨는 아랍인의 칼날에 비친 햇빛이 위협적이어서 정당방위로 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책의 절반을 할애해 국내 최고의 카뮈 권위자인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 번역을 조목조목 지적해 출판계에 번역 논란을 불렀다.
■ 국내에 소개된 외국 문학작품의 오역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헤밍웨이의 노벨상 수상작 에 등장하는 '돌핀(dolphin)'은 한국 근해에서도 서식하는 '만새기'인데 돌고래로 번역돼있다. 역시 헤밍웨이 소설 에서 'toll'은 사람이 죽어 조종을 친다는 뜻으로 가 옳다. 생텍쥐베리의 는 가 정확한 표현이다. 'prince'는 왕자 외에도 작은 나라의 군주란 뜻이 있는데 어린 왕자가 살다 온 소행성은 그가 다스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 올바른 번역은 우리 문학을 외국에 알리기 위해서도 절실하다. 신경숙 작가의 장편 가 해외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번역의 도움이 컸다. 최근 개막한 런던도서전에서 돌풍을 일으킨 이정명의 추리소설 과 황선미의 동화 의 번역도 번역한 영어 전문 번역가 김지영씨의 작품이다. 한국 문학의 영미권 시장 진출의 핵심은 전문 번역가 양성이라는 게 작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 번역분야 권위자 김욱동 한국외대 교수는 근저 에서 '자기 번역'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안정효가 과 를 영어로 직접 번역해 미국에서 출간하고, 한국계 미국 작가 김은국이 와 을 먼저 영어로 낸 뒤 직접 한국어로 번역해 출간한 사례를 소개했다. '문학한류'는 역량 있는 작가와 뛰어난 번역가, 출판계가 힘을 모아야 이뤄질 수 있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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