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 왕국'의 이면에서 대리수술과 과다마취 같은 불법 행위가 성행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이하 의사회)는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일부 성형외과를 대상으로 자체 조사를 실시해 불법 행위 사실을 확인했다"며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의료기관을 고발하고 관련 의사 회원을 제명하며 광고 규제 방안을 수립하는 등 자정 운동을 하겠다"는 내용의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의사회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의사 회원 12명을 징계했다고 밝혔다.
주로 개원가 성형외과 전문의들로 구성된 의사회가 이례적으로 성명을 낸 것은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 G성형외과에서 성형수술을 하던 여고생이 뇌 손상으로 의식 불명에 빠진 사실이 알려져 성형외과 전반에 대한 불신이 확산된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의사회는 G성형외과 등에서 일한 적이 있거나 퇴직한 의사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경험이 많거나 유명 의사가 아닌 이른바 '그림자 의사(섀도 닥터)'가 대리 수술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김선웅 의사회 법제이사는 "(유명 의사가) 환자에게 수면마취제를 과다 투여해 잠 든 것을 확인한 뒤 수술실에서 나가면 그림자 의사가 들어와 수술을 하고 다시 유명 의사가 들어오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의사회는 그림자 의사에게 대리 수술을 맡기기 위해 마취과 전문의가 없는 상태에서 수면마취제를 필요 이상으로 투여하고 마취제를 다량 확보하기 위해 의사면허를 대여하면서까지 새로운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등의 악순환이 일부 성형외과에서 반복돼 왔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은 성형 수술이 많은데다 관련 기술도 뛰어나다는 소문이 나면서 최근 외국인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성형 관광이 활성화하고 있는데 이제는 외국에서조차 그림자 의사의 존재를 알고 있을 정도라고 의사회는 덧붙였다.
의사회의 한 관계자는 "과다 경쟁 속에서 병원 규모가 점점 커지고 기업형 성형외과가 늘면서 이 같은 폐해가 발생했다"며 "의사만 15~20명에 이르는 대규모 성형외과는 수익 구조를 갖추기 위해 광고로 환자를 모으고 수술도 그만큼 많이 해야 하는데 이로 인해 의료진 역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김선웅 이사는 "하루 16시간 일하는 의사도 있었다"며 "수술에 집중력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새벽 4시까지 수술하고 오전 9시에 다시 출근해 수술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의사회의 관계자는 "G성형외과를 고발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면서 유사 행태나 위법 사실이 적발되면 의사회 차원에서 제명과 고발 등 엄정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의사회는 성형 수술은 높은 수준의 의학지식뿐 아니라 고도의 집중력, 철저한 윤리의식이 요구되는 의료행위라면서 "한국 사회에서는 성형수술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하나의 상품 정도로 인식돼 일부 부도덕한 의사들이 상업적으로 이용해왔다"며 "책임을 통감하고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약속했다. 의사회는 이를 위해 ▲과대 광고로 성형수술을 부추기는 행위를 자제하고 ▲합리적인 성형 관련 광고 규제 방안을 수립하며 ▲대리 수술을 범죄 행위로 규정해 법적으로 대응하고 ▲의사회 홈페이지에 신고센터를 개설하겠다고 밝혔다.
관계자들은 광고나 상담에 현혹되지 말아야 하며 꼭 수술을 하겠다면 응급 상황 발생 시 긴급 대처가 가능한 병원을 선택하는 등 환자 역시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전신마취가 필요한 수술은 응급의료장비와 상주 마취과 전문의가 있는 곳에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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