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난한 첫 무대였다."
10일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 뒤 이주열 신임 한국은행 총재의 기자단담회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대체로 우호적이었다. 그의 화법은 장황하기보다 명료했고, 현란하기보다는 솔직했다. 첫 무대에 대한 부담감에 아주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처럼 허점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이날 금통위의 결과는 기준금리 연 2.50% 동결. 이 총재를 포함해 금통위원 7명 전원의 만장일치 결정이었다. 작년 5월 금리를 0.25%포인트 내린 이후 11개월째 이어진 동결 행진이었다. 시장이 충분히 예상했던 결과였던 만큼 관심은 그 다음이었다.
"앞으로 경기회복이 지속되고 수요 부문에서 물가상승 압력이 생겨 물가안정을 저해할 상황에 이르면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문제를 논의하겠다." '언제쯤 금리를 올릴 것 같냐'는 질문에 대한 이 총재의 발언은 해석하기 따라서 아주 원론적인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 발언을 매파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선제적'이라는 표현에 주목했다. 박형민 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은 "중립적이긴 했지만 선제적인 금리 인상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미세하게나마 남아 있던 금리 인하 기대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적어도 방향만큼은 금리 인상쪽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얘기다.
경기 상황에 대한 인식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했다. 비록 통계 개편에 따른 착시 효과가 대부분이긴 해도 이날 한은이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경제성장률을 3.8%에서 4.0%로 올려 잡았고, 이 총재 역시 "국내 경제도, 세계 경제도 회복세를 지속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특히 우려감이 커지고 있는 중국 경제에 대해서도 "중국 정부는 위기관리능력과 경제운용능력 면에서 지금까지 상당히 잘해 왔다"며 비교적 낙관적인 견해를 폈다. 증권사들은 이날 오후 앞다퉈 이 총재가 '매의 발톱'을 넌지시 내비친 것이란 내용의 보고서를 쏟아냈다.
그렇지만 이런 시장의 평가는 다소 부풀려진 측면도 있다. 시장 참가자들이 '비둘기파'적 시각에 대한 기대가 컸던 탓에 원론적이고 중립적인 발언조차도 '매파'적으로 해석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금리 인상 시기가 크게 앞당겨질 것으로 보는 것 역시 무리다. 한은은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도 당초 2.3%에서 2.1%로 낮춰 잡았다. 최소한 물가가 한은의 중기 물가안정목표 하단(2.5%) 위로 올라서야 금리 인상 검토에 들어서지 않겠느냐는 것이 시장의 관측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도 수개월은 동결 행진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현주 KDB대우증권 선임연구원은 "한은의 물가전망을 보면 9월 이후나 돼야 소비자물가가 목표 하단인 2.5%를 넘어서기 시작할 것"이라며 "빨라도 4분기에나 금리 인상이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실제 금리 인상 자체는 내년 이후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임 김중수 총재 당시 기자간담회 내용에 좀처럼 미동하지 않던 시장이 다소나마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은 매우 의미 있는 변화였다. 이날 채권 금리가 뛰고 원ㆍ달러 환율이 반등한 것을 두고 "이주열 효과"라는 평가들이 곳곳에서 나왔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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