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담배소송의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하면서 두 가지 큰 벽을 제시했다. 흡연자 개개인이 담배 때문에 병에 걸렸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고, 여기에 더해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담배의 위험성 등을 숨긴 담배회사의 과실과 고의가 인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위법을 입증할 담배회사의 내부자료 등을 확보하지 않으면 사실상 승소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우선 대법원은 흡연자 원고 2명의 흡연과 암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 환자는 의학적으로 원인이 뚜렷하지 않은 비소세포암 등에 걸렸다. 1심 재판부는 6명 원고 전원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고, 항소심은 이중 흡연과 연관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소세포암 등에 걸린 4명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대법원이 4명에 대한 판단을 어떻게 할지 주목됐으나 민사소송에서는 원고와 피고 어느 쪽도 문제를 삼지 않은 쟁점이면 판단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아쉽게 대법원 판단을 받지 못했다. 4명 원고들은 항소심에서 이긴 쟁점이라 상고이유에서 뺐고, KT&G 등은 아예 상고를 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특히 KT&G의 담배 제조ㆍ설계ㆍ표시 등에서 손해배상을 할 만큼 위법성이 없다는 원심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피고들이 흡연으로 인한 담배소비자의 피해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합리적인 대체 설계를 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채용하지 않았다고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한 원심 판단을 수긍했다. 흡연자가 니코틴 등의 약리효과를 노려 흡연하는 만큼 니코틴이나 타르가 들어가지 않은 담배 제조를 하지 않을 수 있는데 제조하지 않았다고 해서 설계상 결함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담배 표시상의 결함도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1962년에 영국왕립의학회가 흡연의 위험성에 관한 정부 차원의 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199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도 신문 등을 통해 담배가 폐암 등 다양한 질병의 원인이 되며 사망률을 높인다는 점이 보도됐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또 1975년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에 따라 국가가 1976년부터 담뱃갑 앞면에 '건강을 위해 지나친 흡연을 삼갑시다' 등의 경고문구를 넣도록 한 점도 참작했다.
담배의 안전상 결함은 담배가 기호품인데다, 담배 외에도 발암물질이 포함된 식품이 많다는 점에서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담배(연기)에 발암물질이 존재한다거나 이로 인해 흡연자들에게 건강상 위해가 발생할 수 있고 의존증(중독)이 유발될 수 있지만, 기호품인 담배 자체에 통상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안전성이 결여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비가공 식품이나 권련에도 발암물질이 존재하는데 담배만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취지다.
또 원고측은 "KT&G가 중독성을 높일 수 있도록 담배연기의 pH농도(수소이온농도)를 조작하기 위해 암모늄 화합물을 비롯한 유해한 첨가제를 사용했다"는 등의 주장을 했으나 대법원은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국가가 흡연을 권장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잎담배 경작농민들을 위해 외국산보다 국산을 애용해 달라는 취지에 불과했다"고 판단했다.
담배제조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은 1953년 미국에서 처음 제기됐으며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유사소송이 잇따랐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2009년 담배제조사인 필립모리스에 7,950만 달러의 징벌적 배상을 선고했지만 일본, 프랑스, 독일 등에서는 법원이 담배회사의 책임을 인정한 사례가 거의 없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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