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국가의 작가로서 문학을 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떠오르는 역사의 트라우마와 투쟁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 문학은 한국전쟁의 아픔을 밀쳐놓고 한 줄도 편안하게 나아갈 수 없었다.
런던도서전이 열리고 있는 런던 얼스코트 전시장에서 8일(현지시간) 문학과 역사를 주제로 대담한 소설가 황석영(71)과, 파키스탄 출신의 영국 작가 카밀라 샴지(42)는 지독한 현대사를 겪은 나라에서 문학을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파키스탄은 인도와 나뉘고, 다시 1970년대 방글라데시로 분단되면서 깊은 상처를 입었다. 두 작가는 문학의 역사적 책무를 이야기하면서 문학이 아픈 역사를 적극적으로 다뤄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 했다.
황석영 작가는 "문학이 예전처럼 사회ㆍ정치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1990년대 이후 역사를 전면에 내세운 글쓰기를 피하고 있다"며 "오에 겐자부로와 르 클레지오 등 외국 작가들이 (내게) 얘깃거리가 많은 나라에서 태어나 좋겠다고 했는데 그 말이 역사를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압박 하의 글쓰기를 "사나운 마누라와 같이 사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샴지는 이에 "파키스탄의 젊은이들이 아픈 현대사를 잊으려 하지만 문인들은 반정부 시위에 나서는 등 현실 참여에 적극적"이라며 "작가에게는 사람들의 의식에 역사의식과 아픔을 심어야 하는 책무가 있다"고 답했다.
황석영은 "과거 군사정부와 맞서면서 감옥을 세 번이나 들락거렸다"며 "지금 그런 상황이 일어난다면 또다시 맞설 것이지만 작가로서는 불운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서양 작가들처럼 하고 싶은 일 존중 받으며 작가로 살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개인적인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샴지는 "(황석영이) 현대사의 중압감으로부터 자유로운 서구 작가가 부럽다고 했는데 이 말이 편하게 들리지만은 않는다"며 "사실 서구 작가야말로 역사 상황에 대한 이야깃거리를 많이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구 작가들은 미국이 전 세계에서 하는 행위에 대한 소설을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며 역사의식을 잃고 있는 서구 문학계를 비판했다.
황석영은 대담을 마치며 "감옥에서 나와 재기할 때 일어설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한국 독자였다"며 "그들은 작가가 시대를 배신하지 않으면 끝까지 작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문화적 열망 또한 뛰어나다"고 말했다.
도서전에 함께 참석한 소설가 신경숙(51)은 대표작 와 구상중인 신작에 대해 각국 출판인들과 이야기했다. 신경숙은 8일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의 문학담당 에디터 아리파 아크바와 대담 형식으로 진행한 '문학 살롱' 행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밤기차에서 본 엄마의 고단한 얼굴을 보고 엄마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한 게 의 씨앗이었다"고 말했다. 신경숙은 차기작을 묻는 질문에 "갑자기 앞을 볼 수 없게 된 사람의 이야기와 사랑에 실패한 네 사람의 옴니버스를 놓고 고민 중"이라며 "마음을 빨리 정해 당장 내일이라도 신작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런던=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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