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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4월 10일] 염치가 없어진 사회

입력
2014.04.0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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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주택으로 이사를 한 후 계속 골치를 썩히는 일이 있다. 거주자 지정 주차구역이라고 해서 근방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지정된 자리에 주차를 시킬 수 있는 제도 때문이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야 전용공간을 사용하면 되지만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이 제도가 없으면 주차할 곳 찾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잠깐 차를 몰고 갔다 오면 언제나 자기자리인양 불법 주차해 놓은 얌체족들이다. 전화번호도 안 남겨놔서 연락할 방법도 없고 견인 조치하면 벌금에 멀리 가서 차를 찾아야 되는 불편함을 끼치기 싫어서 기다리면 막상 와서 차를 빼서 갈 때 미안한 표정조차 짓지 않는다. 오히려 욕설을 퍼붓는 경우도 있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이런 이들은 대형차, 그 중 수입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거다. 나중에 견인차를 운영하시는 분께 이유를 알아보니 수입차는 함부로 견인했다가 조금이라도 긁히면 책임을 견인차 업체에게 떠 넘긴다고 한다. 당당하게 자리자리인양 주차했다가 사과 한마디 없이 사라져도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 거주자 주차구역에 불법 주차한 차량은 견인 외엔 아무런 제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멀쩡한 주차구역이 있는데 불법주차 딱지를 몇 번이나 떼이니 환장할 노릇이다.

같이 음악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리허설 약속을 안 지키거나 전혀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나타나는 사람들이다. 이럴 경우 다른 연주자들은 마냥 기다리던가 준비 안된 사람을 위해 같이 처음부터 맞춰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연주자들이 제일 말도 많고 불평도 많다. 누가 자기에게 안 맞춰주고 음악해석이 이상하다면서 다른 연주자를 괴롭힌다. 괜히 연습시간을 늘리자며 그제서야 책임감을 느끼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연주자 중 대부분이 상당히 이름도 있고 잘하는 연주자로 알려진 이들이다. 오히려 일반연주자들은 조금의 기회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언제나 확실하게 준비하고 정확하게 약속을 지킨다.

어릴 때부터 가장 무서웠던 것이 간첩사건이었다. 연관된 사람들은 가족까지 사회에서 매장을 당했고 무혐의로 풀려나더라도 평생 따가운 주변의 눈초리를 감당해야만 했다. 이렇게 일반인들에겐 말만 들어도 서슬 퍼런 무서운 국보법을 들이 밀던 국정원과 검찰은 증거조작으로 이 사건을 진행한 조작 당사자와 내부인들에겐 형량이 훨씬 가벼운 모해증거위조 및 모해위조증거 사용혐의를 적용했다. 자기들이 남에게 들이밀던 날카로운 칼날은 왜 자신들에게 향할 때는 그렇게 무디어 지는지. 일당 5억짜리 노동형은 일반인들에겐 상상의 범주를 넘어간다. 아마도 그가 하루 일하면서 감면되는 금액은 일반인들로선 평생 꿈으로만 상상할 수 있는 액수일 것이다. 도대체 이런 결정을 하는 사람들은 누굴까. 그야말로 한국 사회의 엘리트 계층이 아닌가? 말 그대로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일반 국민들에게 대체 뭘 지도하려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끼리 이렇게 사니깐 너희 어리석은 백성들은 상관하지마 라고 강변하는 건가?

남들보다 가진 것이 많은 이들은 무릇 자기자신에게 더욱 엄격해야 한다. 가진 바가 많고 능력이 뛰어나면 당연히 남들에겐 선망의 눈길을 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사회적 규범과 상식을 무시하라는 면죄부를 주진 않는다. 제대로 된 초등학교 교육만 받아도 이런 기초적인 것은 알 수 있을 텐데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무시하는 걸까. 그들은 자녀들을 교육시킬 때 너희는 사회의 무법자가 되도 되니깐 기죽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가르치는 건가? 문제는 그들의 행동과 언행이 일반인들에게 단순히 불평만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따라 하게 한다는 거다. 위장전입을 이제는 더 이상 일반인들이 범법행위로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이 만든 염치없는 행위들이 더 이상 사람들에게 분노를 일으키지 않게 되는 그 순간이 무서운 거다. 얼마 전 유명한 냉면집을 갔을 때 주차할 장소가 없어서 빙빙 돌다가 빈 거주자 주차구역이 눈에 띄었다. 내 차가 수입차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류재준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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