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보험왕은 으레 중년 여성의 차지였다. 자유로운 근무시간 덕에 가사활동 병행이 수월했고, 주부들간의 인맥을 동원할 수 있어 '보험아줌마'들이 한때 전체 설계사의 90%를 넘을 정도였다.
이런 여성우위 현상이 최근 달라지고 있다. 올해 들어 남성들이 각 보험회사에서 매년 실적이 최고인 설계사를 선발하는 보험왕 타이틀을 잇따라 거머쥐고 있는 것. 그 시작은 롯데손해보험의 유범수(49)씨부터다. 보험영업 24년 차인 유씨는 2009년 동상을 시작으로 2011년, 2012년 2년 연속 실적 2위를 차지하다 올해 1위에 올랐다. 이달 초 연도대상 시상식을 개최한 LIG손해보험에서도 임승진(39)씨가 첫 남성 보험왕이 됐다. 메리츠화재에서는 김만호(57)씨가 대상을 받아 역시 회사 창립 92년 만에 첫 남성 보험왕이 됐다. 여성직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전화(TM)영업을 주로 하는 현대하이카다이렉트에서도 사상 최초로 남성 상담직원인 김태현(41)씨가 대상을 탔다.
업계에서는 2000년을 전후해 남성 설계사들이 늘어나면서 최근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고 난 후 실직한 남성들이 대거 보험영업에 뛰어들었고, 2000년대 초반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보험사들이 대졸 출신 젊은 남성 설계사 채용을 선호하면서 남성 설계사 수가 증가했다. 1990년대 후반 전체의 5%에 불과했던 남성설계사 비중은 지난해 12월 기준 30%에 이르렀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고학력 회사원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보험영업 시장도 빠르게 전문화했다"며 "최근에는 재무지식을 갖추고 자산관리까지 해주는 남성 설계사들이 실적이 좋은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여성 못지 않은 부드러움과 성실함을 주무기로 내세운다. 1998년 보험영업을 시작해 지난해에만 매출 31억을 달성한 LIG손보의 임승진씨는 "남성이다 보니 처음에는 다들 경계하는 편"이라며 "말투나 손동작, 목소리를 부드럽고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많이 연습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보험 가입고객이 사고를 당하면 현장에 직접 가서 고객을 응대한다"고 했다.
메리츠화재 보험왕 김만호씨는 "남성직원이 많은 기업이나 공장 위주로 영업을 한다"며 "동년배 남성이 가지는 동질감으로 어필한다"고 했다. 휴대폰 안부문자나 고민상담 등을 통해 꾸준히 관심을 쏟는 것도 김씨의 영업비결이라고 귀띔했다.
현대하이카다이렉트 김태현씨는 "하루 평균 통화량이 다른 상담직원(180분)을 훨씬 웃도는 270분 이상"이라며 "이를 위해 매일 남들보다 1시간30분 더 일찍 출근하고 불필요한 이동시간을 줄이려고 담배와 커피도 끊었다"고 했다.
20, 30대 젊은 남성설계사 비중도 확연하게 높아졌다. 30대미만의 젊은 설계사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삼성화재, 현대라이프, AIA생명 등은 프로그램 내 남성설계사 비중이 70~85%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현대라이프 관계자는 "취업하기가 어려워지고 설계사에 대한 인식도 전문직으로 바뀌면서 설계사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며 "하는 만큼 보수를 받을 수 있다는 있어 도전정신이 강한 남성 지원자가 여성보다 많다"고 말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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