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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작은 놈을 입안에 쏙~ 팔딱팔딱 살아나는 봄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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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작은 놈을 입안에 쏙~ 팔딱팔딱 살아나는 봄맛

입력
2014.04.09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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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치라는 생선이 있다. 갯바람에도 봄꽃의 따순 내음이 묻어 있는 한 철, 삼월 말부터 오월 초까지 달포 가량 회로 먹는 서해안의 별미다. 무척 작다. 얼마나 작은가 하면, 그래도 회를 떠 먹는다는데 최소한 이만큼은 되겠지, 그렇게 짐작하는 '최소한'의 10분의 1쯤 될 것이다. 길어야 3㎝. 무게는 몇 그램이 채 되지 않는다. 이놈의 성질이 또 급해서, 물 밖에 나오면 몇 분 안 돼 죽어버린다. 그래서 실치를 활어회로 먹자면 산지의 포구로 가는 수밖에 없다. 충남 당진시 석문면 장고항이 대표적인 곳이다.

팔딱팔딱 뛰는 산 놈을 보려면 바다로 나가야 한다 길래 배를 얻어 탔다.

"풍어예요, 풍어. 올해는 작년보다 배 이상 잡히네요. 어영~차! 이것 좀 봐유, 그물 찢어지겠네."

실치는 베도라치 치어를 부르는 말이다. 베도라치는 겨울에 해안 가까운 해초에 알을 낳는데 이르면 3월 중순부터 치어가 그물에 걸려 든다. 성장 속도가 빨라 5월 중순이면 뼈가 돋아 더 이상 회로 먹을 수 없다. 이 작은 놈을 잡기 위해선 특별한 그물이 필요하다. 낭장망의 일종인데 실치를 가둘 촘촘한 그물 앞에 눈이 굵은 그물이 겹쳐진 이중구조다. 실치가 담기는 것은 뒷그물. 대정호의 박병복 선장님은 그런데, "실치가 풍어"라고 적절한 너스레를 떨면서도, 다른 고기가 든 앞그물의 묵직함에 신이 난 듯 보였다. 전날 심한 바람에 물 위로 올라온 주꾸미의 수확이 쏠쏠했다. 도매가로 실치는 ㎏당 1만5,000원, 주꾸미는 ㎏당 3만원 이상이다.

"옛날엔 드러먹이배(무동력선)로 실치를 잡았어요. 실치 철엔 바다 가운데 닻을 내려 놓고 한두 달씩 배에서 먹고 자고 하는 거예유. 기계가 있나, 엔진이 있나. 맨손으로 장(그물)을 끌어 올리는데 어찌나 힘들던지…."

상자에 담겨 파닥거리는 실치 떼는 눈부시게 투명했다. 햇빛을 반사해 푸른 빛을 띠는 눈알과 하얀 실처럼 보이는 뼈를 빼면 윤곽이 없을 정도다. 이 여린 것에 무슨 맛이 있을까 싶지만 봄철 꺼슬해진 입맛을 되찾아주는 깊은 감칠맛을 담고 있다. 칼슘과 단백질의 함유량 또한 멸치 못지않다.

실치는 포를 뜨는 재료로 주로 쓰인다. 표면이 끈적해 서로 엉기기 때문에 김발처럼 생긴 발에 얇게 펴서 바른 다음 햇볕에 말린다. 실치포라고 해야 되겠지만 요즘은 뱅어포라는 이름으로 팔려 나간다. 큰 강의 하구에서 잡히는 뱅어는 '백어(白魚)'의 발음이 변한 것이다. 조선 초부터 여러 문헌에 이미 기록이 나타날 만큼 인기 높은 생선이었다. 하지만 공업화가 시작된 1960년대 강이 오염되면서 모두 사라졌다. 뱅어의 치어와 베도라치의 치어가 꼭 닮았는데 실치로 포를 뜨기 시작한 것이 이 즈음이다. 실치는 뱅어의 대체재인 셈. 장고항에서 나고 자란 주민 유명천씨는 이렇게 기억했다.

"어릴 때는 일본말로 '니부시'라고, 멸치처럼 쪄서 말려 놓고 연중 먹었어요. 볶아서 반찬도 만들고 아욱 넣고 국도 끓여 먹고. 그런데 언제부턴가 실치로 포를 만들기 시작하더라고요. 요즘처럼 회로 먹기 시작한 지는 20년쯤 될 겁니다."

1960, 70년대 뱅어(실치)포 만들기가 한창일 때 장고항엔 실치잡이 배 타러 온 총각들, 포 뜨러 온 처자들이 많았단다. 변변한 공장 하나 없던 때였으니 일본으로 수출까지 하던 실치 어업은 어엿한 산업이었다. 그렇게 눈이 맞아 이곳에서 결혼한 짝도 적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들도 하나 둘 다시 대처로 떠나고 장고항은 궁벽한 어촌의 모습으로 남았다. 항구가 다시 붐비기 시작한 건 이 자디잔 생선을 회로 찾을 만큼 사람들이 먹는 재미를 추구하고 나서부터. 봄 한 철, 실치가 그물에 들 때면 항구는 다시 은성했던 옛 기억으로 들떠 오르는 것인데, 그게 바로 지금이다. 다음달 초까지, 장고항에서 실치회를 맛볼 수 있다. 26, 27일엔 실치 축제도 연다. 가격이 다소 비싼 게 흠. 실치국은 한 그릇에 1만~1만5,000원, 실치회(무침)는 한 접시에 2만~3만원 정도 한다. 당진시 문화관광 (041)350-3114

당진=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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