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자하니 일찍 흐드러져서 이제 곧 가버릴 꽃철. 하마 늦어버린 듯도 한데, 그래도 여즉은 봄일 터이니, 진달래 꽃구경을 한번 가보자. 목적지는 충남 당진시 면천면. 미리 말해 두는데 여기 진달래밭, 산을 벌겋게 태울 만큼 넓지도 않고 어찔하니 혼을 뺄 만큼 향이 짙지도 못하다. 그런 걸 바랄작시면 여수 영취산이나 창원 천주산이나 이천 설봉산엘 가셔야 하겠다. 그래도 진달래 하면 영변에 약산 다음으로 면천을 꼽아야 옳을 것이니, 천년 하고도 백년이 더 된 우리 진달래의 면목이 이 고을에 전해 내려오기 때문이다. 면천 두견주(沔川 杜鵑酒). 이곳 진달래는 질항아리 속에서 만개한다.
"농번긴데 하루 전에 연락을 주면 워치켠댜….그래도 오랜만에 이래 고쿠락(아궁이) 앞에 앉으니께 뜨뜻허니 좋네."
지금은 선글라스에 선크림 잔뜩 바르고 떠난 봄나들이 인증샷의 배경이지만, 우리 조상들에게 진달래는 산나물과 진배없는 먹거리였다. 꽃은 따먹고 잔가지와 실뿌리, 말린 잎은 모두 약으로 썼다. 당연히 술도 담갔다. 등 옛 기록에 남아 있는 이름이 두견주다. 진달래가 행정구역을 따지지 않고 피어나니 두견주도 팔도에서 저마다 만들어 마셨다. 그 중에 현재 전통 제조법을 계승하고 있다고 인정 받는 지역이 면천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젠 현대화한 시설에서 술을 생산한다. 사진을 찍자고 꾸역꾸역 가마솥 시루에 밥을 찌고 손으로 덧술을 붓는 옛 방식대로 재현을 부탁했다. 점잖은 충청도 양반들이지만 처음엔 귀찮은 내색을 완전히 감추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해보는 일이 재미난 듯 아주머니들의 말투가 점점 차지게 변했다.
"술 빚는 법? 아이고, 남자들은 쥐어줘도 몰러. 노염(부정) 타면 안 된께 저어-리 가 있어. 아, 오늘 고두밥 참 잘 됐네…누가 가서 쑥이나 좀 캐와 봐. 절구에다 찧어서 떡 해먹고 남는 놈으로 술하게. 부회장네 집에 콩가루 있다고 안 그랬어?"
'메이드 인 코리아'의 술은 녹색병 아니면 갈색병에 담아 천오백원에 파는 게 다인 것 같지만 사실 우리의 술 문화는 음식 문화만큼 풍성했다. 우리 술은 크게 탁주와 청주, 소주로 나뉜다. 근본은 모두 같다. 농경 민족답게 곡식을 누룩으로 발효시켜 만든다. 간단하다. 곡식(주로 쌀)을 물에 불리거나 익혀서 누룩과 섞어 놔두면 발효하면서 알코올을 지닌 걸쭉한 액체가 된다. 맑은 부분을 떠낸 것이 청주이고 남은 찌꺼기를 물과 섞어 거른 것이 탁주, 곧 막걸리다. 청주를 소주고리에 넣고 가열해 다시 응결시키면 소주가 된다. 두견주는 이 가운데 청주에 속한다. 막걸리보다 청주의 양이 훨씬 적다. 그래서 막걸리는 들일 하면서 마시던 친숙한 술이고 청주는 양반가의 제사상에 오른 아정한 술이다. 그 청주에 연짓빛 진달래꽃을 아름 따다 뿌리운 건, 아무리 도학자의 표정을 짓고 있어도 감출 수 없는, 우리 겨레붙이의 타고난 풍류일 것이다.
"근거 없이 두견주가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녜요. 면천 두견주 설화에 나오는 현장이 이 지역에 아직 그대로 있다니까요."
찾아간 날 가마솥 아궁이와 시루, 항아리 등을 빌려준 집은 면천면 삼웅2리 이장댁이었다. 이장 유재석(63)씨의 설명은 이랬다. 지금은 당진시에 속한 작은 면이지만 면천은 백제에 뿌리가 닿는 유서 깊은 고을이다. 조선 말 문인 김윤식의 문집 에 이런 얘기가 실려 있다. 고려의 개국공신 복지겸의 고향이 이곳. 복지겸이 원인 모르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게 되어 면천으로 요양을 왔다. 아무리 약을 써도 차도가 보이지 않았는데 열일곱 살 딸 영랑이 아미산에 올라 기도한 지 백일 만에 꿈에 신령이 나타났다. 신령이 이르기를 찹쌀에 진달래꽃을 넣어 술을 빚되 반드시 안샘의 물을 쓰라고 했다. 그리고 뜰에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으면 아버지의 병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랑은 그 말대로 했고, 복지겸은 완쾌됐다. 지금 면천 초등학교 교정엔 아름드리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고 가까운 곳에 안샘도 남아 있다. 면천면 죽동리에 있는 당진에서 가장 높은 산(349m)의 이름도 아미산이니, 이곳 사람들이 두견주의 '오리지낼리티'에 자부심을 갖는 건 당연한 일.
"옛날 면천에서는 지체 높은 사대부집 따님을 '영랑 아가씨'라고 불렀어요. 면천에 묘역과 사당이 남아 있는 복지겸이 뒤에 이 설화와 결합한 것일 수는 있지만, 두견주의 유래에 대한 설화 자체는 분명 면천의 것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겁니다."
두견주의 명맥이 세세년년 아름답게 이어져 온 것만은 아니다. 일제강점기 우리 술 말살 정책이 있었고 '잘 살아 보세'라며 쌀로 술을 못 빚게 핍박한 군사독재 시절도 있었는데 사실 맥이 완전히 끊길 뻔한 아찔한 순간은 비교적 최근에 있었다.
중요무형문화제 제86-2호인 면천 두견주는 3대째 양조장을 이어오던 박씨 집안에서 제조법이 전수돼 왔다. 그러다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박승규씨가 2001년 별세했는데 이수자들이 문화재청 심사에서 그만 자격 미달 판정을 받았다. 이후 면천에서 가양주 잘 빚기로 소문난 3명이 이수자로 추천 받았으나 역시 자격 미달. 애가 단 주민들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술을 전공한 대학 교수들에게 용역을 줘서 옛 문헌에 나타난 두견주 제조법을 복원하고, 전국의 술 잘 빚는다는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전통주 제조법을 배우고, 그렇게 빚은 술을 놓고 전문가와 두견주 맛을 기억하는 지역 주민들로부터 심사도 받았다. 2003년, 문화재청은 개인 보유자를 따로 두지 않는 조건으로 주민들에게 자격을 인정했다. 지금 무형문화재 두견주의 보유자(주체)는 '면천두견주보존회'다. 보존회 김현길(47) 회장의 말.
"8가구 주민들이 모여 술을 빚지만 제조법은 표준화한 방법을 엄격하게 따릅니다. 본래 가양주로 담글 때는 단양주(한 번에 빚은 술)로 만드는 집이 많았는데, 지금은 옛 방식대로 이양주(밑술을 먼저 만들어 덧술로 붓는 술)로 만들죠."
두견주는 입 속에 향미가 끈적끈적하게 남을 만큼 달다. 연분홍 진달래 꽃잎은 따서 말리면 짙은 보랏빛을 띠는데, 찹쌀과 함께 빚어 숙성하면 보드라운 황금색으로 변한다. 두견주는 밑술을 담가 10일, 고두밥 쪄서 덧술을 붓고 발효하는 과정이 70일, 술을 떠내 숙성되는 시간이 20일 해서 빚는 데 꼭 100일이 걸린다. 전엔 집집마다 항아리 가득 두견주를 담가 두고 귀한 손님이 오거나 명절, 제사 때가 되면 용수를 박아 그 금빛의 달콤함을 한 사발씩 떠서 나눴다. 꽃잎은 따서 말려두면 연중 쓸 수 있기 때문에 두견주 빚는 철은 따로 없다. 그래도 진달래가 만개한 봄이면 어느 집 할 것 없이 꽃을 따다 화전도 만들고 두견주도 빚었단다. 채무순(70) 할머니가 들려준 기억은 다음과 같다.
"못 담그게 했제. 순사 단속이 나올 것 같으면 나뭇간에 감추고, 짚누리(짚단)로 쌓아 놓고 그렇게 숨겼쥬. 그래도 갑자기 들이닥칠 때가 있었슈. 그럴 땐, 집 앞에다 화다닥 금줄을 쫙 쳐놓는 거여. 애 낳았다고. 그럼 제 아무리 순사라도 못 들어왔슈. 왜 그러고도 만들었냐고? 아땀, 충청도 양반집 밥상에 두견주 한잔 없어서 쓴댜. 아무리 없이 살아도 우리가 면천 양반인디."
●면천 두견주는 살균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생약주라서 저온에서 보관해야 한다. 공식 유통기한은 90일. 그러나 냉장고에 보관할 경우 더 두고 마셔도 된다. 700㎖ 한 병에 1만5,000원. 면천두견주보존회 (041)355-5430. 제14회 면천진달래축제가 19, 20일 면천읍성 부근에서 열린다. 전통 방식으로 두견주를 만드는 체험행사도 마련된다.
당진=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