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치러진 인도네시아 총선의 표본 개표 결과 예상대로 제1야당 민주투쟁당의 승리가 확실시된다. 그러나 예상 득표율이 목표치 30%에 크게 못 미쳐 총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7월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이루려던 계획이 다소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투표소 2,000곳을 상대로 한 미국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표본 개표(진행률 57%) 결과 민주투쟁당은 18.56%를 득표해 1위를 차지했다. 수하르토 군부독재 시절 집권당이었던 골카르당이 득표율 14.7%로 2위에 오르며 선전했다. 수하르토 사위이자 전직 장성인 아부리잘 바크리 총재를 내세운 '향수 전략'이 주요한 것으로 분석된다. 급진적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대인도네시아운동당(11.92%)이 3위에 올랐고 현 집권당이자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은 득표율 9.9%로 4위로 추락했다. 2억3,000명 인구 중 86%가 무슬림인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이지만 이슬람 정당들의 득표율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인도네시아판 출구조사로 2004년 총선부터 도입된 표본 개표는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전문기관이 투표 종료 직후 일부 투표소에서 신속히 개표 결과를 내놓는 제도로 이번엔 56개 기관이 참여했다. 다음달 9일 공식 개표 결과 발표에 앞서 각 당의 득표율을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신뢰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도네시아 총선은 비례대표제로 각 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구조여서 민주투쟁당의 의회 장악은 확실해 보인다. 유권자 인구가 1억8,600여만명으로 인도,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민주주의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이번 총선에서 국회(하원) 의원 560명과 지역대표회의(상원) 의원 132명을 선출한다. 지방선거도 이날 같이 치러져 주의회 의원 2,112명, 시ㆍ군의회 의원 1만6,895명이 선출된다. 전국 54만4,000여곳에 투표소가 설치됐고 23만명이 출마했다. 동서로 넓게 퍼진 군도 지형이라 지역별로 최대 2시간의 시차를 두고 투표가 진행됐다. 일부 동부 지역은 악천후 등으로 투표용지가 제때 수송되지 못했다.
기대에 못 미치는 득표율이지만 민주투쟁당은 총선 승리로 집권 전망을 한층 밝혔다. 인도네시아에서 총선 결과는 대선과 직결된다. 선거법상 총선 득표율 25% 또는 국회 의석 20% 이상을 획득한 정당만 대선후보를 낼 수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다른 당과 연합해 기준을 충족해야만 대선 출마가 가능하다. 민주투쟁당은 당초 단독으로 대선후보를 낼 것으로 자신했지만 저조한 득표율에 발목이 잡혔다. 필립스 버몬트 CSIS 연구원은 "대선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 받던 골카르당이 대선후보 선출을 두고 정당 간에 벌어질 합종연횡 과정에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다"고 분석했다.
민주투쟁당은 대선을 4개월 앞둔 지난달 조코 위도도(52) 자카르타 주지사를 일찌감치 대선후보로 정했다. 재작년 주지사로 당선된 위도도는 수수한 옷차림에 빈민가를 자주 찾는 친서민 정책으로 정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조코위'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그는 고위층 부정부패로 민심을 잃은 정부 및 집권당과 대비되는 '새정치'의 상징적 존재로 특히 도시민ㆍ젊은층에서 인기가 높다. 의료 현실을 도외시한 건강보험정책, 올해 초 홍수를 부른 미흡한 치수정책 등 비판도 적지 않지만 그의 지지율은 최근 45%까지 치솟으며 경쟁자들을 압도하고 있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인도네시아운동당 총재, 아부리잘 바크리 골카르당 총재 등 경쟁 후보들의 지지율은 10% 내외다. 이날 자카르타에서 부인과 함께 투표한 위도도는 "우리 당이 다수당을 차지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