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유학중인 한국인 여대생이 괴한들에 납치된 지 한달 여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이달 6일 우리 교민이 총에 맞아 숨지는 등 한국인을 상대로 한 강력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유학생 3만여명을 포함해 총 8만여명의 교민이 거주하는 필리핀에서 한국인 안전에 비상이 걸렸다. 필리핀에서는 2009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총 36건의 교민 피살 사건이 발생했고, 올해 들어서도 4명이 강력 범죄로 희생됐다.
9일 외교부에 따르면 필리핀 마닐라에서 유학 중이던 한국인 여대생 A(23)씨가 지난달 3일 괴한들에게 납치됐다가 8일 범인 은신처에서 피살된 상태로 발견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피랍 직후 필리핀 경찰에 총력 수사를 요청하고 무사 석방을 위해 다각적 노력을 펼쳤으나, 마닐라 북서쪽 외곽의 납치범 은거지에서 여대생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는 "훼손 상태가 심해 육안으로는 신원을 확인할 수 없으나, 사체를 확인한 남동생이 '피랍 당시 누나가 입었던 것과 같은 복장'이라고 말했다"며 "필리핀 경찰이 정확한 신원 확인을 위해 우리측에 유전자 및 치과진료 기록 제공을 요청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마닐라 소재 대학에서 수년 째 유학 중이던 A씨는 지난달 3일 마닐라 시내에서 친구를 만나기 위해 택시를 타고 이동하다가 피랍됐다. 외교부는 범인들이 당초 물품만 뺏으려 했으나, 외국인이라는 걸 확인한 뒤 몸값을 노려 납치한 것으로 추정했다.
피랍 사실은 A씨와 만나기로 한 친구가 같은 날 저녁 9시쯤 납치범으로부터 몸값 요구 전화를 받으면서 확인됐다. A씨 친구는 필리핀 주재 한국대사관에 연락했고, 대사관 신고를 받은 필리핀 경찰도 수사에 착수했다.
범인들은 납치 직후인 지난달 5일까지 10여 차례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를 걸어왔고, A씨와 우리 측과의 통화도 이뤄졌다. 그러나 지난달 5일 A씨와 마지막 통화가 이뤄진 후 연락이 끊겼다가 닷새 뒤인 10일부터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연락이 재개됐다. 이달 8일 저녁 필리핀 경찰은 납치범 검거에 성공했고, 마닐라 북쪽 지역의 납치범 은거지에서 A씨로 추정되는 시신을 발견했다.
한국대사관 및 현지 한인회 등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필리핀의 취약한 사법 시스템 때문에 한국인 피살사건 대부분이 미제로 남겨지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12건의 피살 사건 중 범인이 검거된 것은 1건에 그쳤다. 한국 정부는 교민사회에 자율 방범활동 지원비로 연간 1만1,000달러를 지원하고 있으나 현지 경찰의 취약한 수사력과 만연한 부패 등으로 교민들의 불안과 공포는 여전한 상태다.
외교부 당국자는 "유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필리핀 유학생과 교민에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며 "필리핀 경찰청에 한국인 관련 범죄 전담팀(코리안 데스크)의 인력 증원을 요청하는 한편, 필리핀 주재 대사관의 경찰 인력 증원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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