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칠곡군 계모 의붓딸 학대 사망사건에서 친언니가 동생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게 된 것은 오랫동안 학대를 받아온 친언니를 가해 부모와 함께 방치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등에 따르면 '동생을 때려 죽인 언니'라는 누명을 쓴 A(12)양은 동생(당시 8세)이 계모로부터 폭행을 당해 숨진 지난해 8월 16일부터 계모가 구속된 10월 초까지 함께 생활했다. 이 기간 A양은 두 차례 경찰서에 소환됐지만 변호인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진술을 녹화할 때 구미에 살 때 잘 따랐던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상담사가 대신 입회한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경찰은 A양 자매가 평소에 자주 싸웠다는 부모의 진술 등을 이유로 A양과 계모를 함께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계모가 검찰에 송치된 이후부터 지난 2월 지역의 한 보호시설로 거처를 옮길 때까지 A양은 친아버지와 같이 살았다. 친부 역시 계모의 폭행을 방관하고 가담했지만 수사당국의 강제격리조치는 없었다. 친권ㆍ양육권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부ㆍ계모와 함께 사는 동안 A양은 경찰수사과정에서도 법정에서도 자신이 동생 살해 주범이라고 진술했다. 이명숙 변호사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부모가 원하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 맞기도 했다"며 "계모가 원하는 대로 진술하지 않으면 자신도 동생처럼 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짓눌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건 초기부터 계모와 격리되고, 전문가의 법률지원을 받았다면 6개월이나 '동생 죽인 언니'라는 낙인으로 고통 받지 않았어도 될 일"이라고 덧붙였다.
친부와 분리되면서 A양의 진술은 바뀌었다. 사건 발생 6개월만에 고모가 나서 지역 한 아동보호시설로 거처를 옮긴 A양은 2월부터 의료기관의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더 이상 계모의 폭력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인식한 김양은 계모를 "사형시켜 달라"고 진술했다. 1월 말까지 "계모를 석방시켜 달라"는 탄원서를 내던 것과 180도 달라진 것이다. 며칠 또는 몇 달 간격으로 목 조르기, 앉았다 서기 반복, 3계단 위에 발을 걸쳐놓고 팔 굽혀 펴기, 손목을 묶은 채 계단에서 넘어뜨리기, 발가벗겨 놓고 베란다에서 밤 지새우기, 이틀간 물 한 방울 안주기 등 끔찍한 가혹행위도 털어 놓았다.
대구=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