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말하는 '스펙' 쌓기는 '경력' 쌓기다. 영어로 specifications로, 본래 물건이나 디자인 상품 등의 '요건 품질 구체적 내용'을 언급하는 말인데 언젠가부터 입사 지원자의 자격(requirements) 요건이라는 용어로 쓰는 사람이 많아졌다. Specification을 줄여서 '스펙'라고 말하는 것은 긴 단어의 나머지를 버리고 간략하게 말하는 일종의 '버림' 용법인데, 이 단어는 물건에 쓰는 용어를 사람에 썼기 때문에 올바른 용례는 아니다.
수학에서 1.414213을 간단히 1.4로 줄이는 경우도 있고 1.99를 2.0으로 올리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편의상 소수점 이하를 반올림(rounding)하거나 올리거나(ceiling) 버리는(flooring) 경우가 영어에서도 있는데 복잡하거나 긴 단어를 줄여 말하고 아예 후반부를 버리는 일종의 clipping, truncation, shortening이다. 미국을 United States of America의 긴 이름 대신 U.S.A.로 줄이거나 영국을 United Kingdom의 긴 이름 대신 U.K.로 줄여 말하는 것도 첫 글자만 모은 것이다.
수학(mathematics)을 간단히 math라 하고 시험을 exam, 실험실을 lab 등으로 부르는 것은 학생들 입에서 나온 clipping의 예다. 그러나 예비역이나 전역 장병들 사이에서 vet이나 cap 얘기가 나오면 그 말이 veteran과 captain인지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줄임말은 그만큼 대중성과 보편성이 중요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 특수 영역에서만 사용하는 jargon이나 slang으로 남는다. 사람 이름은 생략 축소형이 매우 편리하기 때문에 Elizabeth를 Liz라 부르고 Aaron을 Ron이라 부르는가 하면 Andrew를 Andy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어떤 명칭을 어떻게 줄여야 하는지에는 별도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가령 Patricia를 어떤 사람은 Trish, 어떤 사람은 Patty라 불러달라고 요청하는데, 똑같은 이름이 줄임말로 바뀌면서 전혀 다른 명칭처럼 들릴 수 있다. 이미 대중화한 줄임말 fax 대신 원형 단어 facsimile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은 것처럼 축소형이나 줄임말의 용도는 매우 많고 절실하지만, 그렇다고 spoon과 fork의 복합형을 spork라고 부른다면 당장 이를 알아듣는 원어민은 많지 않기 때문에 줄임말을 자의적으로 만들어 쓰거나 사용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일본인들이 Remote Control을 줄여 remocon라고 부르지만, 원어민들은 첫 단어만 사용하여 remote라고 부르는 것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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