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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공무원ㆍ군인 연금충당부채 596조원의 의미

입력
2014.04.09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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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홍익대 경영대 교수

기업활동에서 객관적이고 투명한 회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주주, 채권자, 채무자, 종업원 등 모든 이해당사자가 기업과 관련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판단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진국은 분식회계를 경제활동의 근간을 위태롭게 하는 범죄로 보고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국민이 나라 살림을 정확하게 알고 세금을 얼마나 어떻게 걷을 것이며 언제 어디에 쓸 것인가를 정하는 기초는 국가회계이다. 2008년에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선진국이 재정 건전성에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 같은 나라는 위기 이전 재정상태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포장돼 있었다는 분식회계 의혹까지 받았다. 국가회계의 객관성과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정부는 잘못된 정책 결정을 내리게 되고 국민은 감시와 비판을 할 수 없게 된다.

지난 8일 정부는 2013회계연도 국가재무제표상 부채가 1,117조원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런데 이 중에 596조원이 공무원과 군인의 연금 충당부채이다. 국민들은 부채 규모가 크다고 걱정할 수 있지만, 이 금액을 보고 우리나라 재정 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다고 판단하거나 국제간 비교 기준으로 쓰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소수 선진국을 제외하고는 연금 충당부채를 제외하는 나라가 더 많기 때문이다. 재정 건전성은 국제적인 재정통계지침에 따라 국가, 지방, 준정부기관을 포함하여 산출한 이른바 ‘일반정부’의 부채를 가지고 비교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회계학자의 입장에서는 정부의 이번 발표에서 부채의 규모보다는 산출 방식에 더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정부가 부채를 산출하는 방법을 선진국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본다. 부채 규모가 크게 나타나는 것을 감수하고 선진화된 기준을 적용하여 부채를 산출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사실이다.

공무원과 군인의 연금 충당부채는 장기적으로 지급해야 할 연금 규모를 예상해서 현재 가치로 환산한 것이다. 장기에 걸친 예상액이므로 공무원 수, 기대수명, 물가상승률 등의 변수가 조금만 달라져도 크게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다. 그리고 계산이 쉽지 않지만, 미래에 보수가 늘어날 것까지 감안해야 한다. 지난해까지는 기술적인 이유로 보수가 현재 수준으로 유지된다는 가정을 적용하다가 올해에는 마침내 선진국 기준에 따라 미래의 보수상승률까지 예측하여 충당부채를 산출했다. 그 결과 충당부채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보이게 됐지만, 없던 부채가 새로 생긴 것이 아니고 계산 방식이 바뀐 탓에 규모가 커진 것이다. 사실 이러한 내용은 매우 전문적인 것이어서 정부가 내용을 잘 설명하여 국민을 안심시키지 못한다면 큰 걱정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공무원과 군인의 연금은 본인의 기여금과 국가의 부담금을 재원으로 해서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연금 충당부채를 모두 국민이 세금으로 부담해야 하는 빚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으며, 정해진 기일에 갚아야 하는 국채나 차입금과 현금부담의무의 시급성이라는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는 국가회계의 선진국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선진국 클럽이라고 할 수 있는 OECD의 34개 회원국 중에서 발생주의, 복식부기 회계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18개국이고 그중에서도 공무원과 군인의 연금 충당부채를 계산하는 나라는 영미권 5개국과 우리나라뿐이다. 경제성장도 압축적으로 했지만, 국가회계제도도 압축적으로 발전해 온 셈이다.

우리나라가 국가 재무결산을 시행한 지 3년 만에 선진국과 같은 방식으로 연금 충당부채를 산출한 것에 대해 OECD는 한국의 국가회계가 ‘프리미어리그’에 진입한 것이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정부 3.0을 슬로건으로 하여 정부의 투명성을 높이려 한 노력이 성과를 낸 것 같다. 앞으로 정부는 프리미어리그 진입에 만족하지 말고 국가회계의 월드컵 챔피언을 목표로 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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