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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보호기관 무기력증, 비극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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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보호기관 무기력증, 비극 낳는다

입력
2014.04.08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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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보호기관이 학대피해 아동을 죽음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지난해 울산에서 계모에게 맞아 숨진 서현이 사건에 이어 경북 칠곡군의 계모 아동학대 사건에서도 아동보호기관이 사건을 접수하고도 피해아동을 적절히 격리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 같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아동보호기관의 제한된 권한, 부모의 항의와 경찰의 무관심 등으로 좌절이 누적돼 적극 개입을 꺼리는 관행이 뿌리를 내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8일 칠곡 사건 법률자문역 이명숙 변호사에 따르면 2012년 10월 경북 구미아동보호전문기관은 숨진 김모(당시 8세)양 등에 있는 화상흔적 등을 확인했다. 숨진 김양으로부터 "엄마가 등에 뜨거운 물을 끼얹었다"는 말을 들은 김양의 담임교사가 사진을 찍어 이 기관에 신고했다. 그러나 기관 관계자가 조사를 나가자 김양은 진술을 거부했고 김양의 아버지, 계모, 김양의 언니 등은 "컵라면 국물 때문" "미역국물을 뒤집어 써 그런 것" "싸워서 그런 것" 등 엇갈린 진술을 했고 결국 사건은 유야무야됐다.

이 같은 현장조사는 부모가 가해자라는 아동학대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김양은 담임교사에게는 사실대로 말했지만 현장조사를 할 때는 김양의 부모가 곁에 있었다고 이 변호사는 전했다. 이 변호사는 "진술이 제각각이라면 아동학대를 의심하고 격리를 요구하거나 경찰에 신고를 했어야 했으나 그렇지 않은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홍창표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팀장은 "보호기관의 담당자가 4차례 조사를 했는데, 조사과정에서 아버지가 체벌을 했다는 진술을 받아 아동학대라는 판정을 내렸고, 추후에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아동보호기관이 제 역할을 방기했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지금까지는 부모가 갖고 있는 친권 때문에 피해아동 격리가 72시간으로 제한돼 있었고, 격리를 해도 봉변을 당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이호균 전 한국아동권리모니터링센터장은 "격리를 요구할 경우 극악한 부모들은 상담원들에게 흉기로 위해를 가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아동보호기관들 입장에선 "어차피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탓에 격리조치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이다

아동보호기관이 신고를 해도 경찰이 폭행 정도가 심각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일도 많다. 칠곡 계모의 경우도 2013년 7월 계모의 남동생이 아이들의 멍자국을 보고 112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애들끼리 다투는 것을 우산으로 말리다 부딪혔다"는 아버지의 말만 듣고 돌아갔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경찰과 아동보호기관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적극적인 개입을 꺼리는 관행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격리가 이뤄져도 피해아동은 오래지 않아 가해자가 있는 원래 가정으로 되돌아간다. 2012년 공개된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격리 후 원가정으로 돌아간 학대아동(379건)중 55.4%가 1개월 내에 돌아갔다. 6개월 이상 격리됐다가 돌아간 아동은 3.2%에 불과했다.

9월 아동학대범죄특례법이 시행되면 아동보호기관과 경찰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하지만 지금처럼 무기력한 분위기를 근본적으로 타파하지 않는 한 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호균 전 센터장은 "상담사가 위기 상황이라면 아동을 강제적으로 격리시켜야 한다는 자기철학이 확고할 경우 대응이 달라질 수도 있다"며 아동보호기관 상담사들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문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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