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에게 점자로 된 병원 진료기록 사본을 제공하지 않거나, 엘리베이터가 없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지하도로 내려갈 수 없다면 장애인차별금지법(장차법) 위반이다. 장차법은 법 위반자(가해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고 있지만 피해액 산출이 어려워 강제성이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 때문에 피해액보다 많은 금액을 배상하게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8일 국가인권위원회와 보건복지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공동주최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장차법 시행 6주년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행 손해배상제도는 실제 발생한 피해자의 손해만큼만 배상하는 '전보배상'의 법리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 차별행위로 발생한 손해는 정신적 피해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고 그렇지 않더라도 피해액을 산출하기 어렵다. 박종운 법무법인 소명 변호사는 "이런 상황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설치하지 않아 장차법을 위반하는 것이 지키는 것보다 금전적으로 이득이 될 수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장차법의 모델로 삼은 미국의 '장애를 가진 미국인법(The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ㆍADA)'은 ▲가해자의 행위가 고의를 넘어 악의적이거나 ▲법이 보호하는 권리에 대해 극도로 냉담한 태도를 보이며 ▲관행적으로 법적 권리를 침해한 것을 피해자가 입증할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한다. 김재원 성균관대 법학과 교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바로 도입하기 어렵다면 위자료를 인정해주는 것으로도 유사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장애 차별행위에 대한 현행 권리 구제제도도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장애 차별행위가 발생하면 손해배상 청구 외에도 ▲인권위 진정 ▲법무부장관의 시정명령 ▲재판을 통한 형사처벌 ▲시정명령 불이행에 대한 과태료 부과 등으로 구제를 받을 수 있다.
피해자 대다수가 인권위 진정을 선택하지만 인권위의 시정권고는 강제성이 없다. 법무부장관 시정명령은 장차법 시행 이후 단 두 번 내려졌을 정도로 실효성이 없고, 차별행위로 형사처벌까지 끌어내기는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는 "앞으로 권리구제 강화를 위해 형사사법절차의 적극적 활용은 물론,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안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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