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가 비리를 일으킨 옛 이사에게 정(正)이사 추천권을 제한하는 내부지침을 만들고도 상지대 사태에는 적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논란이 큰 '종전이사에 과반 추천권 보장' 지침은 고수해 사실상 비리로 퇴출된 설립자가 다시 상지대를 장악하는 길을 열어줬다.
8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사분위의 내부지침인 '정상화 심의원칙'에 따르면, 지난해 7월 11일 사분위는 '비리 등으로 학교 경영에 중대ㆍ명백한 장애를 발생하게 하거나 파렴치 범죄, 반인륜 범죄, 강력 범죄 등을 범한 종전이사는 비리의 정도 및 정상화를 위한 노력 등을 고려하여 정이사 추천권을 전부 또는 일부 제한한다'는 조항(3항)을 신설했다. 개정 전 추천권 제한 대상은 '파렴치범, 반인륜범, 강력범법 행위자'(2항)였지만 여기에 사학 비리를 일으킨 종전이사를 추가한 것이다. 사분위원으로 활동했던 한 인사는 "공공성을 확대하자는 취지에서 보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지침은 '상지대 사태'에는 무용지물이었다. 사분위는 '정상화 이후 교육부의 임시이사 파견은 위법'이라는 취지의 지난해 11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정이사를 새로 선임하면서 설립자인 김문기 전 상지학원 이사장에게 추천권을 줬다. 김 전 이사장은 부정입학 등 비리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고 퇴출된 인물이다.
게다가 김 전 이사장은 1월 사분위 회의에 본인을 정이사 후보 1순위로 올려 사분위에서도 논쟁이 일었다. 이미 이사 9명 중 5명을 포섭한 상황이었다. 한 사분위원은 "종전이사에게 정이사 1명의 추천권을 주되 중립적이고 합리적인 인물을 올려야 한다고 교육부를 통해 요청했는데, 김 전 이사장이 본인을 1순위로 추천해 1월 회의 때 후보 명단을 모조리 반려했다"고 전했다.
2월엔 굿모닝시티 사건 때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권해옥 전 한국도로공사 사장을 추천인 중 하나로 올려 더 격한 논란이 일었다. 결국 "후보 중에서 가장 무난한 인사로 조속히 결정하자"는 의견이 압도해 회계사 조모씨를 지난달 24일 선임해 교육부가 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
교육부는 이 과정에서 아무런 견제나 감독 역할을 하지 않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새 정이사는 종전이사의 추천 몫에 따라 선임된 것"이라며 "재심 요청을 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임재홍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법학)는 "사분위가 편의상 만든 재량준칙(행정규칙)을 일관성 없이 적용해 사태 해결은커녕 교육의 공공성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다"며 "교육부는 사분위 뒤에 숨어 사회적 비판을 피하고 있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상지대 윤명식(26ㆍ법률행정학과) 총학생회장은 "설립자 측 이사들로 인해 이사회가 비상식적인 기구로 전락한 3년 동안 준예산 사태와 총장부재, 재정지원 제한대학 선정 등 여러 문제가 불거졌다"며 "이사진이 물러나지 않을 경우 동맹휴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교수협의회도 이날 총회를 열어 교육부와 사분위의 결정에 문제가 있다는 데 공감대를 이루고 조만간 대응 방안을 확정하기로 했다. 앞서 4일에는 김주택 상지대 총장 직무대행을 비롯한 보직교수들이 모두 사퇴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원주=박은성기자 esp7@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