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KT회장이 마침내 칼을 빼 들었다. KT재정비를 위해 취임 후 두 달간 '장고(長考)'에 들어갔던 황 회장은 경영정상화의 첫 카드로 대규모 감원을 선택했다. 불필요한 사업을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극단적으로 불균형하게 형성되어 있는 인력구조를 바꾸는 게 다른 어떤 것보다 급선무였다는 얘기다.
황 회장은 작년 12월 KT 회장에 내정되자마자 외부 전문컨설팅업체에 정밀 경영진단을 의뢰했는데, 지난 1월에 나온 진단결과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한 소식통은 "경영진단의 요지는 사양부문인 유선분야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전체 3만2,000명 직원 중 유선통신 분야 인력이 약 2만5,000명인데, 이 가운데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2,000명만 있으면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전했다.
집전화로 대표되는 유선통신은 스마트폰에 밀려 갈수록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 하지만 KT는 옛 전화국에 뿌리를 두고 있는 탓에, 임금이 높은 장기재직인력의 대부분이 유선통신 쪽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인력구조조정의 초점은 유선 쪽에 몰려있는 장기근속자들을 감원하는 데 맞춰질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인력구조조정(명예퇴직)의 대상이 15년 이상 재직자로 정해진 것도 이런 맥락이다. KT에서 15년 이상 재직자는 2만3,000명 규모인데, 이는 전체 직원(3만2,000명)의 70%에 해당하는 인원이다.
KT는 특히 이번 명예퇴직을 받으면서 신청자 상ㆍ하한선을 두지 않았다. 한 관계자는 "2만명이 신청하면 2만명을 다 받겠다는 의미다.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회사에선 상당규모의 명퇴신청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조도 상황의 불가피성을 인정, 인력구조조정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복리후생도 대폭 축소했다. 직원 자녀의 대학 학비 지원을 폐지하고 직원 1인당 복리후생비도 연간 160만원에서 130만원으로 낮추기로 했다. 내년부터는 임금피크제도 실시키로 했다.
이와 관련해, KT 내부는 현재 상당히 술렁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감원이든 복리후생축소든 대부분 타깃이 50대 직원들을 향하고 있어, 이들의 불안감은 어느 때보다 큰 상태다. 한 직원은 "대학학자금지원은 몇 백 만원 보너스보다도 큰 혜택인데 이게 없어진다고 하니까 많은 직원들일 충격을 받고 있다. 특히 KT엔 50대 이상 직원들이 많은데 이들에겐 급여삭감 이상의 충격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말이 자발적 명예퇴직이지 결국 나가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게 될 것"이라며 "과거 감원 때에도 명퇴에 응하지 않았다가 험한 보직에 배치되는 사례를 많이 봤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CEO가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대규모 감원이 직원들의 불안감을 높이고, 조직 충성도를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내놓고 있다.
한편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황 회장은 삼성출신 요직영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KT는 이날 최성식 전 삼성화재 전무를 감사조직인 경영진단센터장으로 영입했다. 황 회장은 앞서 김인회 재무실장(전 삼성전자 상무), 최일성 KT에스테이트 대표(전 삼성물산 상무), 서준희 BC카드 대표(전 삼성증권 부사장) 등 삼성출신들을 계속 영입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무엇보다 경영의 핵심 축인 재무와 감사를 삼성 출신에 맡겼다는 게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며 "KT의 방만경영을 수술하려면 삼성식 관리경영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듯 하다"고 말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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