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어부 프로젝트'를 하는 백현진과 장영규는 한국에서 내가 주저 없이 천재라고 부를 수 있는 두 사람입니다."
두 천재가 함께 하는 무대가 오랜만에 마련됐다. 아방가르드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가 11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3년여 만에 단독 공연을 한다. 2010년 발매를 알린 뒤 4년째 감감무소식인 네 번째 앨범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에 담길 곡들로만 구성한 공연이다. 2000년 3집 '21세기 뉴 헤어' 이후 긴 공백을 만회할 이 앨범은 2010년 클래식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한 바 있다.
7일 서울 연남동의 어어부 프로젝트 연습실을 찾았다. 백현진(42)의 집이자 작업실로 같은 건물 위층엔 장영규(46)가 살고 아래 층엔 록 그룹 시나위, 삐삐밴드 출신의 영화음악감독 달파란(강기영)이 산다.
4년 가까이 '제작 중'인 앨범에 대해 물었다. 백현진이 느리고 또렷한 말투로 "빨리 진행이 되는 작업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것도 있는데 새 앨범은 후자"라고 하자 장영규가 부연했다. "2010년 당시에도 많이 바뀌고 있었는데 완성이 안 된 상태에서 공연이 끝났어요. 뭔가를 더 했어야 했는데 뒤로 미루다가 못 냈죠. 이번에는 그때와 또 다르게 작업을 했는데 점점 완성돼 가는 그림이 보이기 시작해요."
이번 공연은 클래식 연주자들과 함께 했던 2010년 콘서트와 달리 록 밴드 구성으로 열린다. 1990년대 중반 데뷔 초부터 함께했던 베테랑 연주자들인 그룹 유앤미블루 출신의 영화음악감독 방준석(기타), 그룹 우쿨렐레 피크닉 멤버이자 영화음악감독인 이병훈(건반), 이병훈과 함께 그룹 보이를 결성했던 이철희(드럼)가 어어부 프로젝트의 미완성 앨범을 처음 연주한다. 중국 옌볜의 조선족 마을에서 지내며 구상한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은 40대 남성 탐정이 1년간 기록한 종이뭉치를 누군가가 주워 무작위로 한 장씩 뽑아 읽는다는 설정의 콘셉트 앨범이다. 한 장의 메모가 하나의 곡이 된다. 제목도 모두 '모월 모일' 식이다.
어어부 프로젝트는 익숙한 반복구절이나 친근한 선율로 음악을 만드는 팀이 아니다. 그래서 늘 '난해하다'는 소리를 듣는데 어렵다기보다 낯설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대중음악가들이 흔히 록이나 재즈, 리듬앤블루스 등 음악 장르의 틀 안에서 움직이는 것과 달리 어어부 프로젝트의 음악은 연극, 영화, 미술, 무용 등 예술 장르 사이를 유영한다.
백현진과 장영규의 창작 활동은 음악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미술가인 백현진은 독일 쾰른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단편영화도 연출했다. 영화 '도둑들' '황해' 등 수십 편의 영화음악을 만든 장영규는 전위적 무용가 안은미의 작품과 다수의 연극 작품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했으며 국악, 현대음악, 무용, 놀이, 연극을 결합한 예술 단체 '비빙'을 이끌고 있다.
데뷔한 지 올해로 17년이고 마지막 음반인 싱글 '튜나 월드'를 낸 지 10년. 그들의 음악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예전엔 무리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젠 무리를 덜 한 것 같아요. 그게 가장 크게 바뀐 것 같아요. 형도 많이 바뀐 것 같고."(백현진) "어어부로 보자면 예전엔 뭔가 의도적으로 이것저것 많이 섞었던 것 같아요."(장영규)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물건을 만들어보자는 목표가 있었는데 이제 그렇진 않아요."(백현진)
전방위 예술가인 두 사람이 만든 신곡이 궁금해 다섯 연주자가 모여 연습할 때까지 기다렸다. 고수들의 연주가 불을 뿜는데 그 속에서 느긋한 여유가 느껴진다. "데뷔 초엔 호락호락하게 들을 만한 음악을 만들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이젠 예전보다 팝적인 레이어가 더 느껴지긴 해요. 그런 게 들어올 때 쳐내는 작업을 많이 하진 않아요. 그래서 팝 밴드라고 거짓말을 하고 다니죠."(백현진)
고경석기자 kav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