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기연(31)씨는 회사에 출근해 녹즙을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전에도 홍삼 엑기스와 비타민제를 챙겨먹었지만 녹즙으로 바꾸고 나서부터 속이 한결 편해진 느낌이다. 김씨가 받아 든 녹즙 용기엔 아직도 냉기가 서려있다. 녹즙은 가열하지 않은 100% 생즙원액, 신선도 유지가 생명이다. 녹즙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풀무원녹즙엔 '5℃원칙'이 있다.
시작은 농장에서부터다. 주원료인 명일엽과 케일을 공급하는 원주 농장에는 15개의 냉장창고가 곳곳에 설치돼 있다. 수확 직후부터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냉장창고에서 냉기를 충분히 머금은 재료는 다음날 공장으로 보낸다. 운송차량은 '온도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관리된다. 5℃가 넘으면 바로 경고음이 울린다.
제조과정에도 온도상승을 막기 위해 착즙과 살균·포장에 이르기까지 수 차례 냉각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미생물은 1㎖당 1만 마리 이하로 관리된다. 정부의 녹즙 미생물 관리 기준은 10만 마리다. 모든 공정에서 저온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한 보존제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각적 효과를 살리는 색소, 맛을 내기 위한 화학첨가물도 일절 금지다. "그래서 녹즙 생산은 가장 간단하지만 가장 까다로운 공정입니다."풀무원 도안공장 김재만 상무의 말이다.
5℃ 원칙의 최종단계는 배송이다. 모닝스텝으로 불리는 풀무원 배달판매사원은 대리점에서 제품을 분류하지 않는다. 실내온도 2℃의 공장 물류센터에서 개별 배송가방을 꾸려 전달하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실온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시스템이다. 모닝스텝에 전달된 녹즙은 아이스팩이 든 보냉가방에 담아 소비자에게 최종 배달된다. 냉장 유통의 법적 기준은 10℃지만 풀무원 녹즙은 철저히 5℃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녹즙을 마시는 소비자는 약50만 명, 국내 시장규모는 연간 2,500억 원(2013년)에 달한다. 최근엔 건강과 미용에 관심이 많은 젊은 직장인이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르면서 기능성을 강조한 발효효소녹즙이나 블루베리 석류 녹즙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사과 배 등을 첨가해 쓴맛을 줄인 혼합즙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 원대일 연봉정유기작목반 대표"자연에 가장 근접하려는 농사, 그게 유기농이죠""정부보다 훨씬 까다롭고 지독해요" 15년 넘게 계약재배를 해 온 원대일(53) 연봉정유기작목반 대표는 풀무원의 유기농 원칙에 혀를 내두른다.
본사 직원이 수확 2주일 전은 기본이고 수시로 작물과 흙을 채취해 간다. 만약 농약이나 화학비료성분이 검출되면 바로 계약이 끝난다. 정부에서 허가한 유기 미생물제라도 풀무원 자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는 게 많다. 그래서 원 대표는 진딧물과 응애를 잡기 위해 달걀 노른자를 섞은 난황유, 가래나무 열매를 우려낸 물이나 목축액을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콜레마니진디벌을 이용한 천적 농법도 계속 시도 중이다. 거름 역시 항생제를 쓰지 않는 유기 축산농가에서 가축분뇨를 가져와 왕겨와 볏짚으로 1년간 숙성시켜 만든다. 씨앗부터 거름원료까지 풀무원에 출처를 제출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관행농에 비해 몇 배가 힘들지만 풀무원과의 의리는 계속 지켜갈 생각이다. "농부의 꿈은 월급쟁이입니다. 대금지급일이 매월 15일인데 지금까지 한번도 어긴 적이 없습니다."지나치리만큼 까다로운 과정을 통해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유기농이 토양과 작물뿐 아니라 농민도 건강하게 살린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자연에 가장 근접하려고 하는 농사, 그게 유기농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생물 제재와 거름도 조금씩 줄여 나가고 있습니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사진부 기획팀=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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