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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 구상이 공허한 이유

입력
2014.04.0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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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한 것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였다. "통일'을 일확천금 도박에 비유했다고 '천박'하다는 사람이 있다. 노력 보다는 '운'을 강조한 것처럼 느껴져 사실 썩 기분 좋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박"은 정서적인 호소력이 강한 용어임에 틀림이 없다. '반겨 맞을 일'이라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정치적 용어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그래서인지 박 대통령은 "대박"을 이후에도 여러 차례 사용했다. 심지어 스위스 다보스에 가서도 "통일은 동북아 주변국 모두에 대박"이라고 말했다. 마치 담합이라도 한 듯한 보수언론의 지원까지 받아가며 박 대통령은 "통일 대박"의 필요성을 역설하는데 몇 달 동안 열심이었다.

그 작업의 하이라이트가 지난달 네덜란드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 이후 독일 방문이었다. 3박4일 일정 중 박 대통령은 드레스덴을 방문해 강연을 통해 이른바 '한반도평화통일구상'을 공개했다. 그 구상은 남북한 교류협력을 위한 세 가지 제안을 담고 있다. 남북 인도적 문제 해결, 공동 민생인프라 구축, 동질성 회복이 골자다. 북한의 산모와 유아를 지원하는 '모자패키지 사업', 남북러 또는 남북중 협력사업, 남북교류협력사무소 설치, 세계평화공원 조성 등의 구체적인 사업 구상도 제시했다. 과문한 탓에 대통령이 해외에 나가 통일구상 같은 걸 발표하면 다들 이 정도는 하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박 대통령의 제안은 "대박"의 값싼 느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 뭉클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 구상이 나오고 열흘 남짓 지났다. 남북관계에서 뭐가 달라졌나. 북한은 노동신문 등을 통해 "우리의 존엄 높은 사상과 제도를 해치기 위한 반민족적인 체제통일" "오물처럼 쏟아 놓은 망발"이라는 악담만 퍼부었다.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 위협과 남쪽을 향한 사격 훈련, 청와대 상공을 지나간 무인기가 대답인 것 같기도 하다.

드레스덴 구상은 훌륭했지만 북한 정권 하는 짓이 어처구니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접근으로는 영원히 "통일 대박"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마냥 꿈에 부풀어 있기 보다 이쯤에서 드레스덴 구상이 얼마나 "통일 대박" 실현에 이바지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박 대통령의 제안은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활발한 동서 교류로 통일에 성큼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은 독일이 보증하니 신뢰도 간다. 문제는 독일과 달리 남북은 그런 인도적인 교류와 함께, 아니 그보다 앞서 풀어야 할 '갈등'이 산적해 있다는 점이다. 드레스덴 구상 발표 직전 벌어진 서해 북한 선박 나포 사건이 갈등의 실체를 잘 보여준다.

군사평론가 김종대씨는 논픽션 에서 '한반도 전역에 평화가 정착되었는데 유독 서북 해역에서만 1990년대 이후 다섯 번의 교전이 발생했다'며 거기서 분쟁이 집중적으로 발생한 이유가 무엇인지 풀지 않고 '서해의 평화, 더 나아가 한반도의 생존과 번영, 평화를 말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남과 북은 전쟁 중'이라는 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최근의 노동미사일 발사와 무인기 사건은 독일과 한반도 사정이 얼마나 다른지 실감케 한다.

박 대통령도 드레스덴 구상에서 "지금 남북한 간에는 한반도의 허리를 가르고 있는 군사적 대결의 장벽"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장벽을 허물어 "새로운 한반도를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군사 대결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 어떤 일을 할지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정부는 드레스덴 제안 이행 준비 운운하기 전에 지금이라도 그 구상에서 빠진 것이 무엇인지 살피기 바란다. 그 작업에서 과거 정부의 노력도 참고가 될 것으로 믿는다.

김범수 국제부장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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