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구독을 중단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이사를 오느라 예전 동네의 지국에 그만 넣어 달라 부탁한 후 어영부영 다음 순서를 밟지 않았더니 그렇게 되었다. 이제껏 그냥 지낸 건 당장의 아쉬움이 없어서다. 정보의 속도로 치자면 SNS 쪽이 더 빠르고, 앱을 다운받으면 지면과 똑같은 구성의 신문을 아이패드로 볼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슬슬 허전한 구석이 생긴다. 첫째는 손맛. 바닥에 펼쳐 놓고 침 묻혀 한 장 한 장 넘기며 세상사를 훑어보는 그 손맛 말이다. 둘째는, 종이맛이라 해야 할까. 발톱을 깎을 때, 프라이팬의 생선기름을 닦을 때, 깨진 그릇을 싸서 버려야 할 때…. 매일 쌓일 때는 처리하기 귀찮더니 막상 없으니까 이만저만 섭섭한 게 아니다. 신문은 하루치의 정보를 얇고 넓게 제공하고 버려진다. 지난 신문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거듭 새겨 읽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게 정보화의 시대를 일군 신문의 힘이자 한계이자 운명이라 생각해왔다. 하지만 2절 크기의 갱지에도 그 나름의 '아우라'가 있는 게 아닐까. 손맛으로 넘긴 신문은 종이맛의 신문지가 되어 살림의 구석구석에 끼어든다. 바닥에 깔리고 기름을 빨아들이고 충격을 흡수하면서 생활의 가장 하찮은 자리를 떠맡는다. 신문이 아니라 '신문지'에서 읽는 철 지난 기사는 그래서 애틋할 때조차 있다. 이제 다시 구독 신청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그 손맛, 종이맛에 중독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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