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호주가 7일 쇠고기 관세 인하를 골자로 하는 경제동반자협정(EPA)을 체결하는 데 대략적으로 합의했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12개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체결을 앞두고 쇠고기 분야는 성역으로 여기던 일본이 돌연 관세 인하 카드를 꺼낸 것이다. 일본 언론은 이런 배경에 이달 말 방일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전략이 숨어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은 호주산 쇠고기에 부과하는 관세율을 현행 38.5%에서 단계적 인하를 통해 협상체결 18년째에는 19.5%까지 낮추기로 했다. 슈퍼마켓 등에서 판매되는 냉장쇠고기의 관세율은 협상체결 15년째에 23.5%까지 내려간다. 호주는 대신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5%)를 철폐키로 했다.
일본은 지난 해 TPP협상 참여를 공식 선언하면서 뒤늦게 관련국과 논의를 시작했으나 국내 농축산업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소ㆍ돼지고기, 쌀, 보리, 유제품, 설탕 등 이른바 '5대 성역 품목'에 대해서는 관세를 철폐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반면 주요 협상국인 미국은 '모든 제품에 대한 완전 관세 철폐'를 요구하고 있어 협상이 좀처럼 진척이 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호주를 끌어들여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겠다는 전략을 짜냈다. 일본은 호주와 쇠고기 관세 일부 인하 협상을 맺으면 향후 쇠고기 대일수출 경쟁국인 미국이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판단, 호주에 이 같은 협상조건을 제시했고 이날 합의에 도달했다. 일본은 24일 예정된 미일 정상회담에서도 미국으로부터 관세 일부 인하를 관철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일본은 대신 호주산 쇠고기 수입이 예년보다 증가할 경우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도입한다는 조건을 달아 일본내 축산업계의 충격을 최소화했다. 일본은 축산 농가가 적자를 기록할 경우 현재는 적자액의 80%를 보전해주고 있으나 이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일호 EPA협상에 반대하던 전국농업협동조합중앙회(JA)도 "(정부가)최대한의 협상을 이끌어내는 데 노력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반면 미국의 입장은 단호하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은 일호 EPA에 대해 "각국 정상이 TPP 협상을 추구하면서 합의했던 내용에 미치지 못한다"며 일본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니혼게이자이는 "미국은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어 일본에 크게 양보할 경우 미국 축산업계의 반발이 클 것"이라며 "미일 정상회담에서 TPP를 둘러싼 미일간 협의가 최대 고비를 맞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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