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온라인에서 잠시 화제가 됐던 음모론이 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2)의 서울 촬영을 둘러싼 우스개다. '어벤져스2' 촬영팀의 한국 방문은 미국 정보기관의 기획이라는 게 이 음모론의 줄기다. 지난달 경남 진주에 운석이 떨어졌을 때 한강에 미확인물체가 추락해 이를 남몰래 인양하기 위해 '어벤져스2' 촬영을 핑계로 미국이 마포대교를 봉쇄했다는, 믿거나 말거나식 낭설이다.
가볍게 한번 웃으면 금세 잊힐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보다 더 그럴 듯한 풍문이 요즘 극장가를 떠돈다. '어벤져스2'와, 상영 중인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가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기 위해 서울 촬영 일정과 개봉 시기를 조정했다는 것이다. '어벤져스2'와 '캡틴 아메리카'의 제작사는 마블 스튜디오이고 배급사(월트 디즈니 코리아)도 같다. '캡틴 아메리카'의 중심 인물인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번스)는 '어벤져스2'에서 아이언맨과 헐크, 토르 등과 어울리며 이야기를 이끈다.
'어벤져스2'의 한국 촬영은 지난달 30일 시작됐다. 나흘 전인 지난달 26일에는 '캡틴 아메리카'가 한국에서 개봉했다. '캡틴 아메리카'는 미국(이달 4일)보다 한 주 앞서 한국에서 첫 선을 보였다. '캡틴 아메리카'의 한국 개봉일이 당겨지면서 또 다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노아'도 '캡틴 아메리카'와의 맞대결을 피하기 위해 개봉 시기를 일주일 앞으로 옮겨야 했다. '캡틴 아메리카'의 상영을 '어벤져스2'의 촬영 일정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노린 전략 아니냐는 분석이 나올 만하다.
'어벤져스2'의 허다한 등장인물 중 크리스 에번스만 한국 촬영장을 방문한 데 대해서도 말들이 오간다. '어벤져스2'는 컴퓨터 그래픽에 영상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기 때문에 스튜디오 촬영이 많을 수 밖에 없는 공상과학(SF) 영화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어벤져스2' 촬영 기간 중 한국을 대거 방문하진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돈 근거다. 결국 '캡틴 아메리카'의 한국 흥행을 위해 에번스만 '파견'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온다.
4일 '어벤져스2'의 이례적인 서울 상암동 촬영 현장 공개는 두 영화의 의도된 상부상조 의혹을 더 짙게 했다. 에번스가 캡틴 아메리카 복장을 입고 월드컵북로를 활보하는 모습이 언론과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전해졌다. 상영 중인 '캡틴 아메리카'의 인지도와 호감도는 급상승했다. 기자회견 등 그 어떤 행사보다 더 큰 마케팅 효과로 이어졌다. '캡틴 아메리카'의 5일 관객은 34만721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이었다. 관객 수가 바닥으로 수직 낙하한다는 전통적 비수기 4월초에 거둔 놀라운 흥행 성과다.
'캡틴 아메리카'의 마케팅 담당자는 "우연일 뿐"이라고 말한다. "'어벤져스2' 촬영과 '캡틴 아메리카'의 개봉은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다. "요즘 할리우드는 특정 영화가 한국 등 해외 박스오피스에서 1위한 사실을 미국 시장 홍보에 활용하는데 그런 최근의 경향을 따라 '캡틴 아메리카'를 일주일 먼저 개봉했다"고도 했다. '어벤져스2' 촬영 덕을 톡톡히 봤다는 점은 인정했다. 특히 "시민들이 SNS에 올린 에번스의 사진이 '캡틴 아메리카'에 대한 친밀도를 높였다"고 분석했다.
지난주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주간 영화 주문형 비디오(VOD) 이용순위(3월24~30일 기준)에 따르면 '어벤져스'가 10위에 올랐다. 2년 전 개봉한 영화로선 유례없는 기록이다. '캡틴 아메리카'는 극장에서 268만903명(7일 기준)을 모았다. 1편 격에 해당하는 '퍼스트 어벤져'(2011)의 흥행기록(51만4,309만)을 추월한 지 오래다. 마블 스튜디오가 상부상조 마케팅을 의도했건 안 했건 분명한 사실은 있다. '어벤져스2'의 한국 촬영은 그들에게 이미 남는 장사가 됐다는 것이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