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사학의 인사들이 사실상 학교를 다시 장악하게 된 상지대 사례를 계기로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사분위는 대법원 판례에도 어긋난 지침으로 되레 사학분쟁을 조장하고, 상급기관인 교육부는 사분위의 결정에 대해 단 한번의 재심 요청도 않는 등 수수방관했다. '교육부 위의 사분위'라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다.
7일 강원 원주시 상지대의 학교법인 상지학원의 새 이사장에 아들인 김길남(46)씨가 선출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교 구성원은 물론 교육계가 들썩이고 있다. 김씨는 비리로 퇴출된 설립자 김문기(82) 전 이사장의 아들이다.
이 대학 교수협의회 등에 따르면, 현재 교육부가 선임절차 중인 이사 1명을 포함해 상지학원 이사 9명 중 6명이 김 전 이사장이 추천한 사람들이다. 사실상 학교를 쥐고 흔들 수 있는 숫자다. 정관 변경, 선임이 제한된 이사장의 배우자 등의 총장 선임, 학교법인 해산 등 주요 사안의 의결정족수(이사회의 3분의 2)이기 때문이다.
비리로 물러난 옛 이사장 쪽이 다시 학교에 발을 내딛게 된 어이없는 사태의 단초를 사분위가 제공했다는 게 교육계의 지적이다. 사분위가 대법원 판례를 왜곡해 '정(正)이사를 선임할 때 설립자가 과반수를 추천한다'는 내부 지침을 만들어 전권을 휘둘렀다는 것이다. 2007년 상지대 임시이사들이 정이사를 선임하자 상지대 옛 재단 쪽이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당시 대법관이었던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보충의견으로 '설립자의 추천에 의해 정이사를 선임하도록 해 설립자의 경영권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냈다. 당시에도 논란이 큰 의견이었다. 그 뒤 2009년 8월 2기 사분위의 법률특별소위원회 간사 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정상화 심의 원칙으로 '과반수 원칙'을 명문화했다.
김명연 상지대 교수(법학)는 "보충의견을 근거로 사분위가 이런 원칙을 만든 것도 불합리 할뿐더러 사분위가 말도 안되는 내부 지침으로 전횡할 동안 교육부도 방관했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지난해 11월 헌법재판소가 개방이사제를 합헌이라고 결정하면서 '사학 정체성은 인적 연속성이 아니라 정관으로 계승된다'고 적시해 '이사 과반수 원칙'이란 내부 지침을 따를 필요가 없어졌는데도 사분위는 이를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2010년 사분위가 출범할 때부터 현재까지 사분위의 결정에 대해 단 한번도 재심 요청을 한 적이 없다. 현행 사립학교법에는 사분위의 심의결과에 이의가 있는 경우, 장관이나 시ㆍ도교육청(초ㆍ중ㆍ고)이 사분위에 재심을 요청할 수 있도록 돼있는데 최소한의 감독 권한 조차 행사하지 않은 것이다. 현재까지 97차례 회의가 열렸지만, 회의록은 작성만 할 뿐 교육부가 '대외비'로 분류해 단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 교육부 관계자는 "절차상 하자가 없다면 사분위의 결정에 (교육부도) 따르도록 돼있다"며 "사분위의 '과반수 원칙'도 2007년 대법원의 판례를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위원은 "사분위가 마치 교육부 위의 준사법기관처럼 행세하는 동안 교육부는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분위의 구성이 대법원장 추천 몫 5명, 대통령 3명, 국회의장 3명으로 돼있어 정권이 바뀔 때마다 편향성 논란을 빚고 있는 것도 문제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정진후 정의당 의원은 "사학법을 개정해 사학분쟁조장위원회라는 오명을 쓴 사분위 인적 구성 요건을 개선하고 성격도 자문기구로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정 의원은 "이미 옛 재단 쪽 이사들의 버티기로 공공기숙사 신축 무산, 교수 충원 무산 등 학내 갈등이 빚어진 사실이 드러난 만큼 사학법상 근거 규정을 들어 이사승인을 취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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