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우의 점프는 특별하다. 체공이 길어 시간이 정지된 느낌이다.' '이재우씨, 이제껏 본 발레 주인공 중 가장 훈훈한 키와 외모네요.'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이재우(23)씨는 아직 대중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블로그, SNS 등을 중심으로 발레 마니아 사이에서는 최근 부쩍 자주 이름이 언급되는 무용수다. 2009년 국립발레단 연수단원 생활을 시작해 2010년 준단원을 거쳐 2011년 정단원이 된 그는 이제 입단 4년 차지만 이미 '호두까기 인형' '지젤' '스파르타쿠스' 등 국립발레단의 주요 작품에 주역으로 나온 적이 있다. 국내 발레리노 중 최장신인 195㎝의 큰 키에서 나오는 힘 있는 연기가 장점이다.
그는 10~13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르는 국립발레단의 고전 레퍼토리 '백조의 호수'에 주역 무용수 중 유일하게 5회 공연에 모두 출연한다. 발레리노 정영재, 김기완씨의 부상으로 출연 횟수가 늘어난 까닭이지만 무엇보다 "키 큰 무용수는 움직임이 둔한 경우가 많은데 그는 이를 남다른 노력으로 극복했고 뛰어난 음악성도 지녔다"(신무섭 국립발레단 부예술감독)는 발레단의 두터운 신뢰가 바탕이 됐다. 이씨는 11일에는 지그프리트 왕자로 무대에 서고 나머지 4회 공연에는 지그프리트 왕자의 무의식을 좌우하는 악마 로트바르트로 출연한다.
최근 국립발레단에서 만난 이씨는 "어려서부터 막연히 꿈꿨던 역할을 차례로 맡는 게 마냥 신기하다"면서도 들뜬 마음보다는 주역 무용수로서의 책임을 더 강조했다. "로트바르트는 연수단원 시절부터 꾸준히 맡아 이번에는 지난번과 다른 무대를 보여주겠다는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는데 지그프리트를 함께 맡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과한 욕심을 내기보다는 컨디션 조절을 잘 해서 무대를 안정적으로 마무리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주역 무용수 중 최연소 단원인 그가 주목 받는 또 다른 이유는 발레리노에 대한 편견이 만연한 가운데 뒤늦게 발레에 뛰어들었던 선배들과 달리 어려서 일찌감치 재능을 발견하고 탄탄히 실력을 쌓아 왔다는 점이다. 국립발레단을 대표하는 발레리노 가운데는 비보이(이동훈), 백업 댄서(이영철) 등을 거치며 10대 중반 이후 발레를 시작한 경우가 흔하지만 이씨는 다섯 살 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처음 동네 무용학원에 갔다. 현대무용과 한국무용, 발레를 동시에 배우던 중 가장 재미있고 잘했던 발레로 진로를 결정했고 초등학교 3~5학년 때는 국립발레단 아카데미에서 좀 더 엄격하게 발레를 익혔다. 고교 2학년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영재로 입학했고 열여덟 살에는 국립발레단의 연수단원으로 무대에 데뷔했다. "어려서부터 발레를 하다 보니 발레리노에 대한 편견의 큰 이유 중 하나인 타이즈 착용에도 부담이 없었고, 친구들도 어린 나이에 뚜렷한 목표를 세운 저를 놀리기보다는 신기해 했죠."
그는 타고난 체격 조건이 먼저 눈길을 끌지만 연습에는 그 누구보다 열심인 노력파다. 큰 키 덕분에 강한 캐릭터를 남보다 쉽게 표현할 수 있지만 단단한 근육을 만들지 못하면 무대에서 오히려 축 처져 보이기 십상이라는 것을 잘 안다. "집과 발레단만 오가는 제 삶을 재미없을 거라고 하시는 분이 많아요. 하지만 저는 지금 제 인생이 정말 재미있어요. 50대가 될 때까지 계속 무대에 서는 게 제 꿈입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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