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칠곡군 '계모 아동학대 살해사건'은 학교와 아동보호기관, 경찰 등이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막을 수 있는 비극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수사기관은 아이가 죽은 뒤에도 같은 피해자인 언니를 계모와 아버지로부터 격리하지 않아 최근까지 '친동생을 죽인 언니'라는 누명을 쓰게 했다는 지적이다.
7일 경북경찰청 등에 따르면 경북 칠곡군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던 김모(당시 8세)양이 숨진 채 병원에 실려온 것은 지난해 8월16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결과 사인은 장기파열이었다. 경찰은 계모 임모(35)씨 등의 진술을 근거로 김양의 친언니(13)가 동생과 다투다 배 부위를 수 차례 발로 차 숨진 것으로 판단했다. 계모는 자매가 다툰 것을 나무라며 김양의 배 부위를 한 차례 찼던 정도로 보았다.
경찰은 지난해 10월 계모 임씨를 상해치사혐의로 구속하고, B양은 소년법원에 송치했다. 평소 딸들을 수 차례 학대한 아버지(36)도 불구속 입건했다. 사건 발생 두 달 만이었다. 이 기간 동안 B양은 자신을 학대해 온 계모와 함께 살아야만 했다. 계모가 구속된 뒤 올해 2월까지는 계모 편을 든 아버지와 살았다.
사이 나쁜 자매간의 다툼으로 인한 비극으로 끝날 것 같았던 사건은 수년간 김양 자매를 키워 온 고모와 이명숙(한국여성변호사회장) 변호사 등의 노력으로 반전을 맞았다. 김양이 동생을 때려 죽인 것이 아니라 아버지 재혼 후 1년 이상 두 자매를 학대하던 계모의 무차별 폭행으로 숨진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B양은 지난달 비공개 증언을 통해 판사에게 "계모가 동생을 죽였다고 진술하라고 강요했다"고 말했다.
이명숙 변호사는 "경찰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B양을 곧바로 격리했다면 보다 빨리 사건의 진상이 드러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김양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결정적 기회가 최소 3,4회 이상 있었다고 지적했다.
김양의 아버지는 2007년 이혼하면서 두 자매를 누나에게 맡겼다가 2012년 5월 재혼과 함께 다시 기르기 시작했다. 몇 달 뒤 김양의 온 몸에 멍이 든 것을 담임교사가 발견했고, 같은 해 10월 학대가 의심된다며 아동보호기관에 신고했지만 아동보호기관은 학대사례로 판정하고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김양이 "계단에서 넘어졌다" "라면냄비에 데었다"는 등 진술이 오락가락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경찰도 무심했다. 계모가 학대한다며 언니 B양이 2012년 10월 경찰에 신고했지만 조사과정에서 부모의 협박에 못 이겨 진술을 번복하자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김양이 사망하기 한달 전인 지난해 7월에도 외삼촌의 신고로 경찰이 현장에 출동, 눈 주변에 멍 자국 등을 확인했지만 "우산으로 자매의 싸움을 말리다 실수로 생긴 멍"이라는 친아버지의 진술만 믿고 철수했다.
이 변호사는 "아동복지법은 학대피해 아동을 격리하고 의료보호시설로 옮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상담기록과 반복되는 신고 등을 참고해 검경이 피해아동들을 격리한 뒤 치료했다면 비극을 막고, 보다 일찍 진상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지난주 결심공판에서 계모 임씨에게 징역 20년, 친아버지 김씨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선고는 울산 계모 의붓딸 학대 사망사건과 같은 날인 11일 이뤄질 예정이다.
대구=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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