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을 다녀왔다. 상주인 친구 K는 고인이 된 아버지의 폐암 투병에 대해 이야기하며 낮게 한숨을 쉬었다. "두번째 방사선 치료는 후회가 돼. 하지 말 걸. 차라리 편히 가시게 할 걸…" 노쇠한 몸이 독한 치료를 견디지 못해 곡기를 끊고 자리보전을 하다 눈을 감으셨다 했다. "하지만 막상 시도해볼 치료가 남았다고 하니 일말의 기대를 안 할 수가 없었어." 몇 년 전 역시 아버지를 잃은 L이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는 선택하라고 하는데, 정말이지 안 하는 걸 선택할 수는 없더라." 돌아오는 길에 나는 고인과 비슷한 연배인 시아버지 생각을 했다. 혼자 지내시는 시아버지는 그 나이에 흔한 질환들 때문에 병원 출입이 잦지만 그럭저럭 건강하신 편이다. 다만 건강검진만큼은 완강히 거부하시는데, 어느 날인가는 설득하려는 아들과 옥신각신하다가 버럭 화를 내신 적이 있다. "그래서 뭐! 이상한 거 나오면 병원에나 들락날락하다 죽으라구? 됐다. 그런 거 싫다." 결기마저 서려 있어 남편과 나는 대꾸할 말을 잃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병에 대해 일단 알고 나면, 모를 때보다 몸도 마음도 나을 게 없다고 언제부터 생각하신 걸까. 먼저 떠나보낸 가족과 벗들을 통해, '모르는 게 낫다'는 아이러니한 앎을 터득하신 걸까. 그런 마음의 결정을 내리기까지 삶과 죽음에 대해 얼마만큼 곱씹으셨을지. 나에게는 아직 살에 와 닿지 않는 생각들. 그 깊이가 까마득해 가슴이 먹먹해진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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