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 중인 대주그룹 계열사들에 자신의 친구인 변호사를 소개한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법정에 섰던 선재성(51) 부장판사(사법연수원 교수)가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전횡을 막으려다 그의 역공으로 ‘비리 판사’로 낙인 찍혔다”고 밝혔다. 지역 법조계ㆍ경제계를 장악한 토호세력이 자신을 견제하던 현직 판사까지 내몰았다는 주장이어서 2011년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선재성 사건’의 진상에 다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선 부장판사는 지난 2일 경기 일산 사법연수원 사무실에서 본보 기자와 만나 “광주지법 파산부 수석부장 시절인 2010년 대주그룹 계열사 대한페이퍼텍과 대한시멘트 법정관리가 나한테 배당되면서 허 전 회장과 악연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재무제표를 보니 담보도 없이 회사 돈을 대주건설에 빌려주는 등 배임 행위가 있어 고발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계열사들을 대리해 일(채권추심)을 처리할 변호사로 친구를 소개했다”고 말했다.
그는 “광주지역에서 이런 일을 처리할 급의 변호사들이 죄다 허 전 회장의 손아귀에 있어 믿을 만한 친구인 강모 변호사를 소개했다”며 “시간이 걸려도 신호를 기다려 도로를 건넜어야 하는데 급한 마음에 무단횡단을 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선 부장판사는 당시 검찰 수사를 받게 된 경위에 대해 “허 전 회장 측이 지역 언론에 흘려 기사를 쓰게 했고 검찰에도 익명의 투서를 보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결국 2011년 정직 5개월 처분을 받았고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해 대법원에서 판사가 직무관련 사건에 변호사를 소개하지 못하도록 한 변호사법 위반만 유죄로 인정돼 벌금 300만원을 선고 받았고, 뇌물수수와 직권남용권리방해 등은 모두 무죄가 확정됐다. 그러나 그는 이후에도 ‘향판(鄕判) 비리’의 전형처럼 회자되면서 재판 업무에서는 계속 밀려나 있다.
반면 이후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된 허 전 회장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고 254억원의 벌금 납부를 미루다 최근 일당 5억원짜리 ‘황제 노역’으로 논란을 빚었다. 2010년 검찰이 별도 고발된 배임 혐의에 대해 석연찮은 이유로 무혐의 처분한 사실도 최근 드러났다. 선 부장판사는 “허 전 회장은 재판 과정에서 변호사 비용만 50억원을 썼고, 당시 검찰이 선고유예를 구형한 것을 두고 광주지검 내에서도 뒷말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뒤늦게라도 허 전 회장 사건이 논란이 되는 것을 보고 아직 정의는 죽지 않았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허 전 회장에 대한 검찰의 선고유예 구형 과정 등은 아직 진상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 향후 의혹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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